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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주안에서 하나되기에 충분한 교회의 규모
등록일
2025-08-18 15:03
조회수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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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제일 가는 율법학자요, 학문 높은 최고의 지식인이요, 귀품있는 로마장교로서 높은 지위를 누린 자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삶이 180도 달라졌다. 핍박과 능욕과 고난과 침뱉음으로 가득한 삶으로 바뀌었다. 한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우고 성도수가 많아지면 그곳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사도행전의 대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있었다 하더라도 단지 두세 페이지 분량으로만 채워졌을 것이다.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루스드라, 더베, 빌립보로… 그리고 데살로니가, 고린도, 그 다음 에베소… 이렇게 한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면 또 다른 생경한 도시로 달려가 목베임과 채찍질의 위협을 무릅쓰고 예수를 전하며 교회를 세웠다.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또 다른 형극이 기다리고 있는 낯선 곳으로 달려갔다.
40년 광야생활을 통해 연단받고 단련된 이스라엘의 신앙은,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후부터 해이해지고 안이해졌다. 삶이 안정되고 부가 쌓이고 이웃나라와 교역을 통해 풍요로와짐에따라, 그들의 영성에 낀 기름기는 두터워만 갔다. 성직자들, 성경교사들은 모임의 상석에 관심을 두고 직분의 높이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다가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하며,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했던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에 눈이 멀어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다. 성전은 화려해지고 예식은 더욱 거대해지고 제사장의 수효는 많아졌지만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의 순수함은 날이 갈수록, 외면의 화려함과 규모에 촛점을 잃고 탁해져갔다. 신앙의 본질은 외면되고 비본질에 사로잡혀갔다.
영국땅에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운 사람은, 토마스 헬위 목사(Thomas Helwys; 1575–1616)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었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침례교회는 존 스미스 목사(John Smyth; 1554 – 1612)가 영국의 국가교회인 성공회의 탄압을 피해 망명했던 암스텔담에서 세운 가정교회이다. 스미스 목사와 그곳에서 동역하던 헬위는 런던으로 귀환하면서, 당시 영국왕 제임스 1세에게 국가가 통치하던 기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자신의 진술을 정리한 ’A Short Declaration of the Mystery of Iniquity’책을 보냈다. 괘씸히 여긴 왕은 그를 옥에 가두고, 헬위는 4년후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이 책을 헌정하기 직전 저술한 책, ‘A Declaration of Faith of English People Remaining at Amsterdam in Holland’에서 헬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적절한 규모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한다. 화려한 예식과 웅장한 규모를 뽐내는 성공회의 교회시스템과 비교하며, 아래와 같이 밝힌다.
“교회는, 구성원이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무리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모든 성도들은 서로를 잘 알아야 하며, 그리함으로 영혼과 육신에 관련된 서로를 향한 모든 사랑의 의무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직분자들은 성령께서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신 뜻을 깨달아 온 양 떼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A church ought not to consist of such a multitude as cannot have particular knowledge one of another... The members of every church or congregation ought to know one another, so that they may perform all the duties of love one towards another, both to soul and body. And especially the elders ought to know the whole flock, whereof the Holy Ghost hath made them overseers.” (1)
엊그제 큰매형과 누님이 오셔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두 분 다 직분자로서 성실히 섬기신 분들이다. 유려한 설교, 실력 쟁쟁한 사역자들의 수준 높은 케어, 무얼 하든 규모와 위엄을 자랑하는 많은 행사와 프로그램들, 촘촘한 직분제도, 수많은 교제와 만남들… 이러한 대형교회의 시스템에 오랜 기간 익숙해져서인지, 세종시로 내려와 많은 해가 바뀌었음에도 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간만에 만나면 신앙이야기로 대화의 장을 대부분 채우지만, 온전히 영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2%의 부족함이 서로에게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최근 교회를 정하고 정착한 지 꽤 되었다고 한다. 세종시 구석 산자락 아래 소재한 작은 침례교회라고 한다. 겸손하신 목사님은 어눌하신 말주변으로 설교만 담당하시고, 모든 봉사와 사역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주체가 되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모든 무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음식을 나누”(행 2:42-47)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과거에는 아쉽게도 직분에 대한 의식, 주변에 대한 의식, 드러내려는 영성 등이 나의 영적 예민함에 감지되었다면 ‘주님과 자신과의 관계’, ‘주안에서 하나되는 교제’와 같은 신앙의 본질에 흡족히 적셔 있었다.
교회의 물리적 크기가 커짐에 따라 서로 관계하는 구성원수가 많아지면, 관계의 깊이와 질이 양보되어질 수 밖에 없다. 본질만을 향한 영적 초점이 여기저기서 들이닥치는 비본질에 대한 관심들로 산만해진다. 현대교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가지 재원과 인재를 확보하여 시스템으로 보강하려하지만, 시스템에 익숙해진 연약한 성도만 양산시킬 뿐이다.
081825
(1) Thomas Helwys, A Declaration of Faith of English People Remaining at Amsterdam in Holland, quoted in William L. Lumpkin, ed., Baptist Confessions of Faith (Valley Forge, PA: Judson Press, 1969), 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