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US
문의/상담
문의하기
신앙이나 쏘솔티교회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제목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굳이 필요하나요?
작성자
sosalty
작성일
2024-09-21 21:07
조회
323
답변완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마 6:8)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에게 필요할 것을 주시고 장차 당할 일을 미리 피하게 하실텐데, 굳이 기도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에게 필요할 것을 주시고 장차 당할 일을 미리 피하게 하실텐데, 굳이 기도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기도의 목적은 자신의 필요한 바를 채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아래의 사례와 같이, 기도를 통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 10:51-52)
이렇게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경우는, 불신자나 연약한 신앙이 성장하는 동기는 될지언정, 신앙의 성숙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신앙의 종착점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도 자신의 필요한 바를 얻으려고 하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첫째,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기도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의 자리가 되려면, 먼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께 감사로써 다가가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로부터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며 교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기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거칠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일수록 감사의 기도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고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어떻게든 우리에게서 감사하고 기뻐할 거리를 빼앗고 안보이게 감추려 합니다. 근심, 염려와 걱정은 불신앙에서 나옵니다. 감사가 없는 삶,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삶, 걱정과 근심으로 충만한 삶 - 세상의 임금, 마귀가 부추깁니다.
기도를 통해 이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다보면,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자신의 내면의 어두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어둠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죄악이 드러나게 되며, 달콤한 죄의 낙을 은밀히 즐겨왔던 자신을 자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시 5:4)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벧전 1:16)
둘째, 하나님의 자녀로서, 제자로서, 동역자로서, 그분과 친밀해지려면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더 다가가려하면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상대방을 알기 위해 마음을 다해 힘써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삶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가 흥미있어하면, 자신은 문외한인 분야라도 공부를 해서 즐거운 대화 상대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흠모의 대상이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더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의도와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금 하려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친밀한 기도가 없는 십만명의 백성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선지자 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치른 블레셋과의 싸움(삼하 5:17-25)은 이스라엘이 패권국으로 거듭나는데 아주 중요한 전기가 된 전쟁입니다. 자신을 처형하러 온 적군에게 응전함은 당연한 것일텐데도, 다윗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놓인 시점에서 주님께 묻는 기도부터 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삼하 5:19)
우리는 한 분야에서 능수능란한 기술을 습득했더라도, 3-40년간 한 우물만 팠던 전문가라도, 깊고 오래 묵은 인생의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로 출중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되심을 믿고 그분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물어야 합니다. 인생에 진지한 질문을 하는 자녀를 기뻐하는 아버지처럼, 우리의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즐거이 응답하십니다. 이렇게 묻고 대답하고 대화하는 과정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그분의 뜻을 밝히 알고, 자신에게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일치시키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자신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과정이 바로 기도입니다. 때론 이 조정 과정이 –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채 – 매우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긴 만큼, 하나님과 내 뜻의 격차가 큰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주님은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사 14:24). 그 뜻을 이루시는 것이 그 분께 영광이며 우리는 이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필요를 채우려는 기도하지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라고 명하셨습니다.
2년간의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땅에 비로소 비를 내리시겠다는(왕상 18:1)의 주님의 계시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파묻고 간절하게 “비가 내리도록” 기도합니다(왕상 18:41-42). 이 장면은 바로, 주님께서 자신의 뜻을 먼저 계시하시고, 계시받은 성도는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 18:41-42)
이상을 정리하면…
기도 동기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절실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우리에게 영향력을 주는 이유는 고난과 위경 속에서 이 절실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위대한 이유는 이 절실함에서 절절 나오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기도의 핵심은 바로 이 시편 구절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이 절실함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무릎꿇게 합니다. “괜찮아! 하나님께서 아시잖아. 어떻게든 도와주실거야. 어련히 알아서 하시지 않겠어?”하고 안위하며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A. W. Tozer는, 이러한 안주(安住) 또는 안일(安逸)한 태도가 영적성장에 가장 ‘치명적인 적(a deadly foe)’라고 지적합니다.
*그림설명: 큰 비를 내리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갈멜산에서 기도하는 엘리야(왕상 18:1-42).
(image from: carmelitedcjnort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