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3에 의하면, “네 형제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우리가 취할 태도는 분명합니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이웃에게, 더 나아가 그가 지금도 여전히 내게 해악을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적 평안을 지키는 것입니다. 특히 분노와 미움의 나락에 자신이 빠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화해는 그 다음 문제 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3).
이 구절만 보면, 상대방의 죄로 인해 해를 입은 피해자는 그가 회개하기 전까지 용서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언제 용서하셨지요?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그 죄를 깨닫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예수를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용서를 이루셨습니다 (롬 3:23-26). 그가 먼저 용서를 이루셨고, 우리는 그의 용서에 믿음으로 반응한 것 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의 용서를 통한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9).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다면, 상대방이 회개하던 하지 않던 우리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채워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복수와 미움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의 죄와 그 참혹한 결과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 신자(信者)의 용서는 하나님과 연합을 의미합니다.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4)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고… 이렇게 회개를 반복하는 자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의심을 품는 것은 신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만져주셔서 회개하고 주님과 관계에서 화해를 얻도록 기도하는 것이 신자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누가복음 17:3에 의하면, “네 형제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우리가 취할 태도는 분명합니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이웃에게, 더 나아가 그가 지금도 여전히 내게 해악을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적 평안을 지키는 것입니다. 특히 분노와 미움의 나락에 자신이 빠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화해는 그 다음 문제 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3).
이 구절만 보면, 상대방의 죄로 인해 해를 입은 피해자는 그가 회개하기 전까지 용서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언제 용서하셨지요?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그 죄를 깨닫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예수를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용서를 이루셨습니다 (롬 3:23-26). 그가 먼저 용서를 이루셨고, 우리는 그의 용서에 믿음으로 반응한 것 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의 용서를 통한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9).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다면, 상대방이 회개하던 하지 않던 우리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채워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복수와 미움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의 죄와 그 참혹한 결과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 신자(信者)의 용서는 하나님과 연합을 의미합니다.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4)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고… 이렇게 회개를 반복하는 자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의심을 품는 것은 신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만져주셔서 회개하고 주님과 관계에서 화해를 얻도록 기도하는 것이 신자의 올바른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