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 COLUMN
설교/컬럼
목사 칼럼
우는 자와 함께 울라
등록일
2024-09-11 17:06
조회수
771
![]()
‘감정이입'능력이 경쟁력이다.
수년전 Forbes紙에 실렸던 기사에 의하면, 초우량 글로벌기업에서 성공한 최고경영인들에게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감정이입(感情移入; Empathy) 능력이다. 감정이입(Einfühlung)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독일 철학자 Robert Vischer의 1873년 박사논문, ‘On the Optical Sense of Form: A Contribution to Aesthetics’에서 처음 표현되었다. 이 용어는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느낀다(feeling-into)의 의미이다. ‘Sympathy’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정은 하지만 그 내면에 들어가지는 않는 제 3자의 입장을 견지한다면, ‘Empathy’는 상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결합하려 한다.
성경에서는 로마서 12:15말씀이 이 ‘감정이입’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잘 풀어주고 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12:15)
예수그리스도의 리더쉽 일면에도 바로 이 능력이 있었다. 우는 자의 슬픔을 비통히 여기시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쏟으시는 ‘감정이입'력이 탁월하셨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2-35)
진정한 친구는, 슬플 때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다.
좋을 때 같이 밥먹고 좋은 데 같이 가고 여행하고 함께 있어주는 사람보다도, 슬플 때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다. 그의 사회적 위치가 높든 낮든, 그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든 아니든… 진정한 친구는 자신의 슬픔을 함께 슬퍼해주며, 자신의 아픔에 대해 함께 애통해하는 사람이다.
같이 웃기는 쉬워도, 함께 울기는 어렵다.
숨막히게 분주하고 할 일 많은 이 시대에, 자신이 원하든 원치않든 맺게된 다양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차갑고 야박하고 냉정하고 메마르고 치열한 현대도시생활에서, 자기 한 몸 추스리기도 쉽지 않은데, 우는 자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하는 자리에는 대략 소요가 요구되는 시간량이 가늠이 안된다. 맺고 끊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로와 위안은 날이 지나도 지속되어야 하기에 시간 소모가 늘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치않아도 눈살 찌푸려지는 사건 사고가 주변에 많은데, 아픔으로 얼굴이 찡그려지고, 슬픔에 겨워 눈물 쏟는 그 현장에 누가 감정 소모하며 동참하고프겠는가? 자신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연락 않하는 것이,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래서 슬플 때엔 모질게 외롭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은 많지만, 슬플 때 함께 슬퍼해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슬픔을 공감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은 기억에 남는다. 그 감사한 기억이 무척이나 오래 간다. 자신의 인생에 소중한 사람은 같이 웃어주기보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다. 대안이나 충고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슬플 때 함께 있어줬던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 슬퍼할 때에 함께 있어줬던 사람이었던가?
난, 누가 슬퍼할 때 함께 눈물 흘리던 목회자로 기억될까?
0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