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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등록일
2025-01-28 22:45
조회수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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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의 영적부흥운동(English Evangelical Revival)
18세기 미국의 대각성운동(North American Great Awakening)
선진들이 신봉해왔던 신앙 생활을 객관적으로 믿음안에서 사유해보고 이것이 잘못 되었음을 인식한데서 비롯된 아름다운 영적 유산들이다. 생각없는 영적 각성은 없으며, 깨달음없는 영적 부흥은 없었다.
유대인 학살의 대표적 인물 중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체포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수송하는 일을 충직하게 수행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수용소에 감금되는 사람의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수용소는 곧 만원이 되어 운영이 어렵게되자… 그는, 수용소로 이동하는 기차에 가스실을 설치하여 유대인들을 이동중에 효율적으로(?) 학살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나중 재판정에 선 그는, 국가의 명령에 순종했을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였다. 이에대하여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thoughtlessness)이 희대의 끔찍한 범죄를 낳았다”고 말하며, 이것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1)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데, 이 말이 '악의 평범성'을 잘 설명해준다. “아이히만은 전형적인 공무원입니다. 그런데 한 명의 공무원, 그가 정말로 다름 아닌 평범한 한 명의 공무원일 때, 그는 정말로 위험한 사람이 됩니다.”(2) 즉, 타인의 처한 입장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 생각이 무능력 상태(inability to think)에 있을 때에 - 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에 대한 현실 자체를 생각해볼 의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상투적인 논리의 방어벽 뒤에 숨어서 자신은 떳떳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피상적이었고, 1차원적이었고, 단순했다. 그리고 이렇게 단순한 생각만으로 그치는 곳에서 '타인이 처한 현실을 생각할 수 없는 무능력'이 잉태된다. 평범하고 단순한 생각에 막혀 생각의 무능력을 낳을 때 악이 생산된다 -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지금 한국사회가 많이 혼란스럽고 많이 아프다. 사실과 진실이 너무 많이 왜곡되고 있다. 객관성과 신뢰성을 상실한 유튜브를 통한 메시지를 사람들이 퍼나르면서 언론과 국가의 공신력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뻔한 거짓말로 세력을 모으는데 국가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부채질하고 있다.
몇주전 초등학교 동창의 장녀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갔다왔다. 초등때에 공부 잘한 친구들이 많아 서울대에 들어간 친구들이 많다. 대부분 대학교수, 정부관료, 대기업 CEO등을 하고 있거나 역임한 친구들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헤어지는 것이 못내 섭섭해서 2차 모임에 다 함께 참석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목사인 내게 질문이 집중됐다.
“태극기부대… 애국, 애국 하면서… 왜 기독교인들은 객관적으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부패한 보수를 마치 자기들만이 애국자인냥 그것도 과격하게 감싸고 도는 이유가 무엇이냐?” 질문의 핵심이었다. 나의 대답은 “기독교인들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면서 그중에서 일부 극우 보수세력이 그러는 것이다. 다만 종교적 교리, 신앙 강령에 대해 복종적인 순종을 훈련받아온 기성노년세대에 이러한 경향이 다소 높은 것 같다”고 했다.
자기 생각없는 맹목적인 순종은 교회에 병이 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가는 길은 종교생활이었다. 그들이 선행을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인정, 칭찬, 보상을 위해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우월하게 생각하며 자신들이 순종/헌신/봉사라는 이름으로 행한 업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은 영적으로 게으르거나 부도덕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타인보다 더 영적 탁월함을 인정받았다는 확신, 자신이 가진 달란트, 교회를 향한 모범적 헌신, 도덕적 우월감 등은 본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주된 근원이 된다. 이러한 굴절된 자신감은, 자신만이 신앙의 표준이라는 영적 교만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생각은 매우 단편적이며 자기 중심적이고, 건강한 사유없이 그들의 삶과 행동은 선배들이 해왔던 대로 ‘전통’이라는 이름아래 맹목적인 무비판적 수용과 함께 구동된다.
건강한 자기 사유가 없는 바리새인들의 생활 방식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그것을 뒤집어 엎고자 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12:34-35)
선한 사람의 말은 선하다. 선한 말은 선한 마음에서 나온다. 선한 깨달음이 없는데 어찌 그 마음이 선하겠으며,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선하겠는가? 하나님 진리의 말씀 안에서 진지하고 건강한 사유 없는 종교인들에 대한 예수의 일성(一聲)이 이러했던 것이다.
기독교의 힘은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할 때 드러난다. 자기 생각, 자기 대답, 자기 묵상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병들게 한다. 순종적인 사람은 착한 사람 같지만, 나쁜 명령에도 잘 순종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다.
사유하는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생각이 마비된 순종은 교회를 아프게 한다.
사회를 병들게하고 위태롭게까지 만든다.
*생각의 무능은 악한 행동을 낳는다(Hannah Arendt).
012825
(1) Hannah Arendt,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Viking Press, 1963)
(2) "Er war der typische Funktionär. Und ein Funktionär, wenn er wirklich nichts anderes ist als ein Funktionär, ist wirklich ein sehr gefährlicher Herr.": Hannah Arendt in conversation with Joachim Fest, a radio broadcast from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