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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광야에는 모든게 낯설다
등록일
2025-02-03 18:29
조회수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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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가…
미시간 이스트랜싱..
다시 서울..
영국 런던..
경남 창원..
광야 같은 낯선 곳에서 살기 위해, 낯선 환경에서 살아 남기위해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낯선 광야에서는 모든 신경세포와 감각의 모든 돌기를 바짝 세우고 있어야지만 적응한다. 그 황량하고 추웠던 광야 생활의 초입, 1997년 7월 앤아버의 미시간호수에서 침례를 받고 나의 신앙생활은 시작됐다.
그리고 거주지를 옮긴 만큼, 그에 따라 교회도 옮겼다. 적지않은 교회를 섬겼으나 실망감을 느끼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던 것 같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말이 다른 자, 상대방에 비수 꽂는 말을 재주삼아 하는 자, 민감한 내용을 여기저기 퍼뜨리는 자, 자기밖에 모르는 자, 옆에만 있으면 상대방의 자존감/자신감을 떨구게 하는 자, 거짓말과 과장을 습관적으로 하는 자… 예수님의 몸된 교회에 지극히 부적절하고, 미성숙하고, 연약함으로 시끄럽고 혼미스러운 인간 군상들을 예외없이 목격했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많은 회의와 갈등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그래서 교회와 멀어진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 하지만 이렇게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범하고 흠집많은 인간 공동체에 한 줄기 영롱한 빛이 임한다. 교회가 교회다운 것은, 그 안에 있는 신자들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들이 하는 선행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 촛점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 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계신가에 맞춰져야 한다.
광야는 지리적으로 현존하는 곳이지만, 영적 은유이기도 하다. 광야는 척박하고, 춥고, 굶주리고, 고독하고, 나 홀로 버텨야만 하는 곳이다. 갈급과 갈망이 용솟음치는 곳이다. 모든 것이 결핍된 환경에서 새벽이슬 단 한 방울이 감사한 곳이다. 생존하기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곳이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칼을 피해 광야 한복판에서, 적국 가드의 왕 아기스 앞에선 다윗… “다윗이 그 유명한 용사”임을 보고받은 아기스왕이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간파한 그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척하며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다(삼상 21:10-15).
그런데 그 매몰찬 광야에 사람들이 모인다. 모두가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망한 자, 빚쟁이, 억울하고 원통하고 세상이 미운… 죄다 사회의 밑바닥, 변두리 인생들이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삼상 22:2)
게다가 다윗을 애숭이 취급하며(삼상 17:28), 자신들을 제끼고 왕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형제들마저 그에게로 왔다(삼상 22:1). 광야의 환란은 나뉘어진 형제들 마저도 하나 되게 한다. 광야의 고통은, 삼류 인생들 마저도 서로 신뢰와 믿음으로 하나 되게 한다. 그들이 과거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못나고, 함량미달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을 불러 모아서 예배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이들을 기반으로 훗날 큰 병력이 되게 하셔서(대상 12장), 다윗을 통해 왕국을 이루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중요할 뿐이다.
앞으로 또 어디 낯선 곳으로 인도하실지 모르겠다.
몸은 내키지않고 주저하지만…
나와 동행하시며 분주하게 일하실
그분을 신뢰한다.
020325
*사진: 광야 초엽, 미 유학시절 큰 아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