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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내 탓이오
등록일
2025-02-27 22:42
조회수
220
밧세바를 간음한 다윗은,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의 선봉에 서게하여 죽게 만들고 그녀를 아내로 차지한다. 이에 선지자 나단은 -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자가, 전재산이라곤 양 한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자에게서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한다 – 는 우화를 다윗에게 들려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 제3자의 실수/죄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쉽게 분개한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반응을 한다. 그는 나단의 우화를 다른 사람에 대한 경책의 설교로, 다른 사람이 겪은 곤경과 그에게 해를 입힌 또 다른 나쁜 사람의 죄악에 대한 이야기로 듣는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반응한다.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 12:5)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저만 떳떳하고 의롭다고 치부하는 도덕적 율법주의자, 남을 향한 책망과 비난을 쉽게 쏟아붇는 종교주의자가 되기는 쉽다. 자칫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팽팽한 영적 긴장과 함께 절제하지 않으면, 잡초처럼 쉽게 드러나는 육의 속성이다. 다윗처럼, 딸과 같은 양을 단 하나 소유한 가난한 자에게서 그 양을 빼앗은 부자에 대해서는 쉽게 분개하고, 빼앗긴 자에게는 하염없는 동정심을 베푼다. 이와 같은 동정심과 분개함은 우리에게 고상한 도덕적 우월감을 불러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영적 성숙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오늘 당장 은혜받은 말씀. 이 말씀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 신앙심이 떨어진 내 아들이 꼭 들어야 할 말씀인데… 이러한 아쉬움 가지고는 자신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받은 말씀 가지고서 이웃의 허물을 보고 죄의 치수를 재고 도덕적 안경을 쓰고 더욱 더 종교적이 되어갈 뿐이다. 참으로 이웃이 믿음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복음으로 변화된 자신이 가장 강력한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된다. 진정한 은혜는 내게 주신 말씀을 나를 향한 일인칭 말씀으로 들을 때 임한다.
저들이…
그가…
당신이…
아니라
"그 파렴치한 부자가 바로 당신이다(삼하 12:7)"라는 질책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바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했을 때, 내 안에서 새 역사가 시작되고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제약없이 일을 하신다.
나 어렸을 때, 참으로 아름다운 사회적 캠페인이 생각난다. “내 탓이로소이다.”
내 탓, 니 탓… 따지면서, 책임을 모면하려고 들며, 상대를 비난하는 데에 노력을 경주하면 할수록 더 큰 비방이 돌아올 것이요, 오히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빨리 깨닫고 뉘우칠수록, 더 빨리 고치고, 회복할 수 없는 상채기가 곪기 전에 적으로부터 동의도 좀 더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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