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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자녀는 적당한 결핍과 고난 속에서 성장한다
등록일
2025-04-28 16:57
조회수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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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보면 요즘 젊은 엄마, 아빠들 참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돌본다.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여 돌보는지, 주일성수 규칙적으로 잘하던 부부가 출산하고 한동안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일도 적지않게 목격한다.
영국에서 주재시절. 경제적으로 모자람없는 윤택한 시기였다. 회사에서 렌트비 내어주는 큰집에서 살고, 회사에서 학비를 지불해주기에 꽤 좋고 비싼 사립학교에 아이들 보내고… 그러다보니 물질의 풍요속에서 자녀들의 아끼고 저축하는 마인드는 날이 갈수록 사그러드는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테스코에 가서 쇼핑한 물건 지불하려고 계산대에서 줄을 서면, 마지막 충동구매를 부추키는 아이템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아이들은 절대 조용히 있지 않는다. 집에 축구공이 이미 두세개가 나뒹굴고 있는데, 매끄럽게 윤이 나는 새공을 사달라고 또 집는다. 안사주면 땡깡부리는 아이들의 시위에 주눅든 아내는 쇼핑 아이템에 그것을 사뿐히 올려 놓는다.
‘저러면 안돼는데…’
‘저러면 안돼는데…’
‘경제관념, 절약정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속으로만 읊조릴 뿐, 뭐라고 타이를 계제(階梯)가 안된다. 주변 사방팔방 낯선 영국인의 시선들에 압도되어있고, 이미 이런 저런 아빠의 잔소리에 “영국에선 안그래요!”의 항변과 함께 나만 왕따되는 곤경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회사를 나와 내 사업(한국음식업)을 시작했다. 투자비도 많이 들었지만 수입도 생각보다 약해서 경제적으로 위축되었다. 인건비를 줄이다보니 아이들도 나와 파트타임으로 일을 돕기 시작했다. 모자람과 결핍속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자기들 스스로 돈을 벌어보고, 용돈을 아껴쓰다 보니, 이들을 향한 나의 묵은 기도가 저절로 응답 되었다. 뭐 하나 사도 허투루 구매하지 않고, 거들떠 보지 않았던 중고제품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결핍을 경험해봐야, 고난을 겪어봐야 평소 잊고 살았던 귀중한 것, 소중한 존재에 감사함을 갖게 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꽃은 달콤한 설탕밭에서 피지 않는다.
썪은 낙엽, 짐승의 배설물, 곤충의 사체들로 부패된 흙속에서 피어난다.
“야단맞지 않고 자라는 세대”.
훈계없고, 꾸지람없는 세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부숴지고 있다. ‘다정한 부모’라는 환상이 오히려 아이들을 망친다. 부모들의 세심한 배려와 극진한 돌봄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아이들이 친구 사귀는 일부터 등교시간, 커서도 출근시간 지키는 것까지 기본적인 일을 스스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불안정하고 무기력하고 자기만 아는 '빈껍데기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감정존중 양육'과 '친구같은 부모'라는 환상아래 “안돼!”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다정다감한 부모'가 되겠다며 체벌하지 않는다. 스스로 부모의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통제권을 잃었고, 자녀에게 약자로 전락했다.[1]
“내가 키우는 내 아이는 절대 스트레스 받으면 안돼!”
일상에서 아이가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부모들이 먼저 막아서고 나선다. 하지만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은 오히려 적당한 스트레스와 결핍과 좌절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떨어져봐야 내게 “날개가 있음”을 깨닫고 비로소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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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bigail Shrier , Bad Therapy: Why the Kids Aren't Growing Up (New York: Sentinel,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