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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이성적 사고 앞에서 근심하시는 성령하나님
등록일
2025-06-18 19:34
조회수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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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교회가 하는 일의 95% 정도는 변함없이 굴러갈 것이다.”
“If the Holy Spirit was withdrawn from the church today, 95 percent of what we do would go on and no one would know the difference. (A. W. Tozer, The Root of the Righteous, 1955)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의 주요한 두 기둥은 '말씀 전파'와 '초자연적인 권능을 통한 사역'이었다.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림으로써, 기사와 이적의 일들을 통해 많은 불신자들을 진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이 모든 일들은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신 후에 일어난 기적적인 일들이었다. 제자들의 복음 사역도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행 1:4)"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전도 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임재를 간절히 구했다. 쇠못이 군데군데 박힌 채찍이 온몸을 휘감을 때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는(히 11:37)” 학대를 받으면서도, 담대히 복음 전파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성령에 의지함에 있었다. 단순히 성령에 의지함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구한 바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개입이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행 4:29-30)"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 지성인들은, 치밀하고 정확한 인간의 이성, 합리적 사고를 통과해야만 믿을 수 있다. 과학적 사고와 합리와 이성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수용은 곧, 몰상식, 비지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쉽게 치부한다. 자연의 체계를 세우시고 자연이 구동되는 법칙을 만드신 분께서, 때때로 그 체계와 법칙을 스스로 초월하시는 일들을 통해 인간의 일상적인 삶에 개입하신다는 중요한 관점에 관해, 많은 크리스천들마저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신학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이신론(理神論; Deism) 또는 자연신론(自然神論)이라고 한다. 이는, 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지만, 인간의 일상적인 삶에 그의 초자연적 개입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은, 영국의 계몽주의 사상가 John Locke의 주장으로 잘 표현된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참되며, 우리의 신앙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에 의하여 계시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이성에 의하여 판단되어야만 한다.”
이성은 이와 같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을 거부한다. 그러나, 우리의 싸울 무기는 이러한 이성적인 생각, 육신적 이론들을 무너뜨릴 영적인 병기, 즉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영적 능력이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4-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현대교회는 영적 지도자에게, 영성과 영적 능력 보다 지적 자질, 이성적 판단력, 목회 전문성등을 요구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뛰어난 설교, 탁월한 리더쉽, 빼어난 조직관리등과 같은 실력, 스킬이 교회에서 오늘날처럼 중요해진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리더쉽, 조직관리, 실력, 성공, 보고, 홍보, 마케팅… 기업영리조직에서나 사용되었던 용어들이 교회의 일상어가 되어 교회 깊숙히 밀려들고 있다. 반면에 성품과 성찰과 영적 깊이는 소홀해져만 가고 있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왕성한 지적, 이성적 활동 끝에 빼곡히 써 내려간 설교문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여백은 없다. 듣는 이에게 즐거움, 지적 동의와 감동은 미친 것 같은데, 성도들의 삶은 여전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했지만 변함은 여전히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성령없이 신자의 거룩한 신앙생활은 있을 수 없다. 혹자는 “성령의 활동은 사도 시대에 이미 끝났다.”는 성령중단설(Cessationism)을 주장한다. 이와 같이 성령을 무시하고, 성령의 활동을 훼방하는 주장을 믿음으로 여기고 신앙생활을 하려하니, 체험이 있을 수 없다. 자기 열심으로 매일 기도하고, 성경책 수십독하고, 교회봉사, 헌신활동 분주히 하지만 변화는 없다. 영적 성숙, 신앙의 열매가 없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다” - “Personally meet Him” - 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체험이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런던에서 섬기던 교회에 면목동소재 한 교회 목사님께서 오셔서 간증설교를 하셨다. 어느 장로교회의 부흥사경회에 초청받아, ‘성령의 임재’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고 한다. 설교후 그 교회 담임목사님과 조용히 면담을 나누던 중, 문득 찾아오신 장로님.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눈에는 이슬이 맺힌 채, 어릴적부터 부모님 손 꼭 잡고 이 교회에 출석하며 평생을 살아왔는데… 나름 성경책 많이 읽고,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 빠지지 않고, 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해왔는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령의 임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르니 사모하지도 않고… 이렇게 70평생을 살아왔는데… “이제 저 어떡해야 해요?”
현재 내가 협력목회 하고 있는 창원하늘교회. 담임이신 노명학목사님처럼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의 임재에 그토록 민감하신 분 별로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길 가다가, 운전하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주님,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저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 얼굴이 생각나면… “성령님, 10년동안 만나보지 못한 그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영문입니까?” 그저 스쳐지나칠 수 있는 생각 한 조각조차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성령하나님과 대면하며 그 영적 의미, 실체를 깨닫고자 한다. 이렇게 성령의 일하심을 존중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에는 성령의 임재로 충만하다.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된 젊은 가장이 이내 아내를 데려오고, 몇 주가 지난후 친모를 모셔오고, 나중엔 불신에 가득 찼던 아버지까지 전도해서 예배에 임하게 한다. 어릴적부터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신앙생활해왔던 한 청년은 직장일로 창원에 내려오게됐는데… 창원하늘교회에 출석하자마자 회개하고, 눈물 쏟으며, 거듭 태어난 기쁨으로 침례받고, 주를 영접하였다. “그 동안 교회 20여년 다녔지만 저는 깡통이었어요.” 그의 고백이다.
나는 28년간 신앙생활해오면서... 출장, 해외유학, 주재원, 교회사역 등의 사유로 많은 세계도시에서 많은 교회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한 지 실로 오래 되었지만, 신앙초보 수준에서 자라지 못하고 변함없는 –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신도 알고, 교회목사님과 성도들의 수년간에 걸친 묵은 기도가 있음도 알지만 – 경우를 수많이 목격했다. 그만큼 “거듭난” 체험을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는 쉽다. 자신의 노력, 인간의 열심 등 모든 힘을 빼고, 이론과 교리등으로 높아지고 견고해진 진을 무너뜨리고, 단순히 성령을 의지하는 자에겐 쉽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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