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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일등할래? 세상을 이길래?”
등록일
2025-06-20 15:13
조회수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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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학 2:12).
유대인에게는 이러한 율법이 중요한 생활강령이기 때문에, 강도에게 때려 맞아 피 흘리며 죽게 된 사람을 보고서도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있다(눅10:30-37). 하지만 예수의 행적은 이런 생활철칙에 물든 사람들의 삶에 큰 전환을 가져온다.
“병든 여인의 손으로 만져진 그의 몸이 더러움을 입지 않는다.” 더 이상 율법 강령이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몸으로 말미암아 12년간 혈루증으로 앓아왔던 그녀의 부정한 몸이 정결함을 입는다(막 5:25-34). 그의 몸은 이 땅에서 저주와 침뱉음과 모욕을 받으셨지만 그는 저주 안에 물들지 않고, 저주 안에 있던 우리도 그의 신성함을 접촉함으로써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그가 이 땅에 오셨다는 ‘Good News’가
그의 피로 우리 죽을 몸을 구원하셨다는 ‘복음’이
세상사는 이치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더러운 것 때문에 더러워지지 않고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깨끗게 한다.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
더러운 죄악으로 절여진 우리를 정결케하사
세상을 신선하고 깨끗게 하는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빛으로 변환되는
대전환이 일어나게 하셨다.
거룩한 성도가 세상을 만나면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정화되고 주변 세상사람들이 변하게 된다. “배가 항해하려면 물과 함께 해야한다. 하지만 그 물이 배로 들어오면 이내 침몰하고 만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과 함께 할 때,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온전히 감당하고 지켜갈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가치관, 문화가 그 안으로 들어오면 교회는 이내 세상을 닮아가고 세상과 구별되어야 할 거룩성을 잃게 된다( https://www.sosalty.or.kr/introduce/vision/#sub1-2).”
믿음 없는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고, 세상사람들의 생각에 영향받기 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Good News’가 우리에게 새롭게 준 생활상식이다. 점점 음침해지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세상에 경건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것이, 복음으로 우리가 얻은 새 소망이다. 서로 비교하며, ‘스펙의 노예’로 묶여 안해도 될 걱정을 싸안고, 생활의 염려로 눌리고, 마음이 어두워진 세상에 이렇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일등할래? 세상을 이길래?”
06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