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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처럼 지혜롭게: "형식으로부터의 탈피"
등록일
2026-01-03 22:28
조회수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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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을 사는 크리스찬에게 세상의 일은 중립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일이 선한 일인지, 아니면 탁하고 악한 일인지 판가름은 오로지 그 일에 임하는 본인의 자세에 달려있다.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종신토록 밭을 경작하라(창3:17-19)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자에게, 세상 일은 거룩한 일이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표면은 크리스찬이지만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다름 없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가치를 좇아, 일을 도모하면 그것이 선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된 크리스찬의 첫째 사명은 예수의 증인되는 것이요(행1:8), 예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마28:20). 교회의 첫째 사명도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귀하고 위대한 사명을 무엇으로 어떻게 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말씀을 들어야 할 현대인들은 분주하고 산만한 환경에서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워낙 일도 탈도 많은 세상이라 웬만한 사건은 사건도 아니다. 수많은 뉴스, 지식, 정보, 커뮤니케이션, 현란한 색채와 비주얼이 범람하고, 여기에 AI까지 가세하는 시대인지라 그들의 관심을 끌기가 점점 어려워져만 간다. 이것들이 범람하는 홍수 속에 사는 사람들도 스마트한지라, 자기의 관심사항, 유익하다 생각되는 것에만 선택적 반응을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미련하고 어리석게 들리는 생명의 말씀을 어떻게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뱀은 마귀를 상징하며 사악의 대명사 아닌가?
그런데 그 뱀을 본받으라니...?
이 말씀을 하신 예수의 의도를 깨달으려면 바로 앞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KBS 동물의 왕국, BBC Planet Earth 등에서 봤음직한, 이리보다 더 강력한 맹수와 싸우는 뱀의 민첩하고 현란한 움직임을 기억하는가? 온갖 맹수들처럼 욕망/정욕/탐심/이기/유혹/비방/비교/자랑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거룩의 순결을 지켜서 세상을 이기려면 세상보다 더 지혜로와야 한다는 뜻이다.
"뱀 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은 세상 못지않게 지혜롭고 유능하라는 뜻이다. 세상에 나아가 크리스찬의 가치, 생명의 복음, 진리의 빛을 전하기 위하여, 거룩의 능력으로 무장하라는 말씀이다. 복음전파의 일에 - 세상의 유능한 자들처럼 - 해야 할 바에 집중하여, 자기관리 철저하고, 사유하고, 분석하고, 깊게 연구하며, 전문적이고, 완성도 높게 일하라는 말씀이다.
국가 경제가 어려웠던 60, 70년대의 한국의 교회는 TV, 스피커, 환등기, OHP projector 등 첨단기자재를 도입하는데 어느 기관 보다도 앞섰다. 경제선진국들에서 파견된 선교단체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조국이 IT 강국이 된 현대에 와서는, 첨단기술, 정보통신을 수용하는 것에 교회가 많이 뒤쳐진다.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세상적 방법’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경직(硬直)이, 지체(遲滯)현상을 더 심화시키는 것 같다.
선진대학들은 AI를 활용하여 전문분야에서 해결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 혁신을 이미 실행 중에 있다. 미국 조지아텍은, AI가 하드웨어를 설계/코딩하고 학생들은 검증 및 디버깅에 집중하여, 개발시간 단축과 설계의 정확도를 높이는 훈련을 한다. 하버드 의과대학은, 환자 수만명의 수십만장되는 엑스레이(X-ray), MRI, CT 영상을 AI가 판독하도록 하고, AI가 잡아낸 이상 징후를 인간 의사가 어떻게 검증하고 최종 판단해야 하는지 판단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한다. 스탠포드 법학대학원은, AI가 방대한 증거 자료를 읽고 핵심을 요약하고, 학생과 함께 관련 판례를 찾도록 하여 승소 확률을 높이는 훈련을 한다.
한국의 신학대, 교회도 AI를 활용하여 어떻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거룩한 사유없이 습관적으로 반사적으로 판단하고 예전에 했던 방법에 안주하는 것이 오히려 비성경적이다. 관습과 형식의 틀에 교회를 가둔다면 "진리 안에서 자유하라(요 8:32)"는 하나님 말씀에 불신앙이다.
세상의 지혜들을 활용하여 복음의 정수를 전하기에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면에, 우리가 전해야 할 실체, 복음의 메시지는 세상적 가치관, 현대인의 관심사에 영합하며 인본적인 관점/태도/사상과 자유롭고 담대하게 악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형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심각하게 되새겨볼 때이다.
‘Biblical Absolutes’
and ‘Freedom of Forms’
010326
* 위 이미지는 "Freedom of Form"에 대한 장 자크 루소의 어록: "자유는 국가의 형태와 같은 고정된 틀에서가 아니라, 자유주권을 가진 국민의 마음에서 나온다." (The Social Contract, 1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