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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주홍글씨: 이사온 지 6개월이 되었지만]
등록일
2026-01-09 17:17
조회수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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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초 인터넷을 통해 떠들썩하게 유포됐던 '개학대 목사'관련 선정적 보도들로 인하여 도저히 목회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호감을 나누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 예외없이 그 다음 대면에서 차갑게 변한 상대 앞에 당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직도 ‘이강헌목사’, ‘쏘솔티교회’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개학대 목사”라는 수많은 주홍 글씨들이 도처에 남아있다. 작년 5대 중앙미디어들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여, '왜곡/편파' 보도임이 결정되어 ‘기사삭제’, ‘반론보도’ 등의 중재 결과가 나왔지만 말이다. (https://www.sosalty.or.kr/news/?mod=document&uid=111 참조)
이래도 저래도 숨막히는 정황이라, 새로운 목회지를 찾아 연고도 없는 대전에 한 실버타운으로 삶의 터를 옮겼다. 이제 6개월 됐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관이 고착되어있고, 간혹 방문하는 가족들과 어울릴지언정 낯선 이에게는 마음을 잘 열지 않는 노인들의 커뮤니티에 가장 연소한 내가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렸다. 하지만 서로 담소하며, 같이 식사하며, 웃고 떠드는 관계의 폭이 많이 확장되었다.
며칠전 평소 내가 전도하던 은퇴하신 여교사님께서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싶다 하신다. 평소에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잘 챙겨주시던 분이라, 귀를 쫑긋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전한다고 하신다. ‘개학대 목사’관련 기사에 대한 얘기다. 지금 입주민 대다수가 수근수근 거린다고 한다.
어쩐지…
‘미소 활짝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시던 이 분이, 내 인사도 받지않고 외면하시던데…’
‘로비에서 신문 읽고 있으면 슬며시 다가오시던 저 분이, 내가 말을 붙여도 퉁명스럽게 반응하시더니…’
‘항상 만나면 안부를 물어오시던 그 분이, 뭘 물으면 가시돋힌 높은 어조로 단답식으로 대답하시더니…’
더욱 마음 아픈 것은, “목사님! 목사님!”하면서 반갑게 대하시던 크리스천 실버들께서 복도에서 나를 마주치면 시선을 딴 데 돌리고 지나치신다.
참으로 하늘 아래 안식할 곳이 없다.
어딜가나 인터넷 여기저기에 배설된 주홍글씨는 아우성치고 있고
주홍색 올가미는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창원 사림동…
전도차원에 방문했던 교회 인근 미장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도중 친근하게 다가온 개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두 번이나 연속해서 물리다 보니, 본능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신학생시절 파트타임으로 개훈련 센터에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의 신체에 해를 주는 개의 행동을 제재하기 위해 개의 목을 견제했다. 목을 조르지도, 누르지도 않고, 경추 부분에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는 방법 - 엄지, 중지, 약지만을 사용하여 U자형으로 목에 올린 채 - 개를 제압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 손가락의 U자 형태를 유지하려면 바닥이 견고해야 하는데, 개가 앉은 쿠션이 단순 스폰지로 만들어져 조그마한 힘에도 움푹 들어가는 성질이 있어, 영상에서 보면 큰 힘을 가한 것처럼 보인다.
견주는 이 부분 30초 분량만 잘라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개학대 목사 제발 벌주세요!”라고 올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나를 심문한 경찰은 심문실을 나서면서, “이것 아무 일도 아닌데… 목사가 했기 때문에 큰 일이 됐습니다. 저희도 무혐의 처리하고 싶지만, 이미 인터넷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사건이 되어 버려서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내 사건에 대해 추가 서면 설명을 할 수 있도록 주어진 기간(통상 4주)을 채우지 않고 2주만에 약식기소 8십만원 벌금형을 훅 내려버렸다.
1심 재판장에는 수의과교수께서 증인으로 나오셨고 풀영상을 분석한 결과:
개가 목을 제재 받은 후,
1) 피고로부터 도망가지않고 계속 주변에 있었고
2) 개의 보행상태나 꼬리동작 등이 지극히 정상적이라, 제재후 충격받은 증거가 없고
3) 제제받을 당시, 공포나 아픔이 있었으면 비명소리가 있었을텐데 전혀 소리가 없고 고통으로 바둥거린 동작도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개가 스트레스받은 징후가 없음을 증언했다. 아울러 “이렇게 개가 학대받은 증거가 없는데도, 단지 견주가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 같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경찰조서에 기록된 바, 견주의 진단서 발급 요구를 거부한 견주측 수의사 의견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1심 판사는, “강아지에게 20초 정도의 압박은 두렵고, 떨리고, 무서운 정도의 압박일 수 있다”면서 수의과 교수의 증언을 왜곡 발췌하여 검사의 양형을 확정했다. 법정에서 교수는, 개가 고통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의견은 ‘추측’일 뿐임을 밝히며, “스트레스는 받을 수 있겠으나 미용이나 목욕 등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증언한 내용을 이렇게 변개해서 양형의 이유로 삼았다. 나의 국선변호인은 판사가 인터넷에 널린 여론을 의식한 것 같다고 내게 설명한다. 해당 형사재판은 상고 중이다.
며칠전 법원으로부터 또 하나의 통지서가 날아 들었다. 견주가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니, 지정일에 재판에 나오라는 공문이었다. 견주가 이 사건으로 인해 영업을 못하고 피해를 봤으니, 이에 대한 보상으로 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이다. 숨이 턱 막힌다.
괴로움에 대한 나의 동정이 무슨 필요가 있나?
나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나의 과업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1)
삶의 지향점을 향해 걷다가 걷다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오면 본능적으로 불필요한 걸 버리게 된다.
깊은 고난의 수렁을 통과한 자는 인생의 시간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핑계도 염려도 사라지고 오직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만 남는다.
아파본 사람은, 고통 앞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예리한 통찰을 남긴다.
인간은 쓰러질 듯 아플 때, 정신줄이 세워지고
감정은 묻히고 방향만 남는다. 가장 정확해진다.
지금은 오리무중.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고통이 나에게 무엇을 선물했는지,
무엇을 끊어내고, 어디까지 데려다줬는지…
지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지금 쏘는 고통이 나를 세차게 밀어 붙이고 있구나!
더 깊은 통찰로…
더 단단한 나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1)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박찬국 역(서울: 민음사, 2015), p 548
*사진: 내가 거주하는 실버타운 실내 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