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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 목사인 난 어떡하나?]
등록일
2026-01-30 12:32
조회수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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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인 나는 무얼 해야하나?
무엇을 하지말고 무엇을 해야할까?
일단 성경 말씀을 해석/풀이/설명하는 지식전달 차원의 사역은 AI가 훨씬 효율적으로 잘 할 것 같다. 성경 해석 뿐만 아니라, AI는 주어진 text와 연관된 기도 또한 은혜롭게 잘 한다. OpenAI의 샘 올트만은 "지능의 한계 비용이 0에 수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즉 누구나 높은 수준의 전문지식에 쉽고 값싸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측면에서 – 아무리 신학이라도 - 오히려 업무와 학업에 이미 AI의 활동도가 높은 일반 성도들이 목회자들보다 더 잘 활용할 것 같다. AI는 지적 영역뿐만 아니라 정서와 정신적 영역에서 꽤 수준급의 역할을 한다. 얼마전 ‘강아지 학대 사건’에 대한 내 입장을 정리하는 글(1)을 AI에게 리뷰를 받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말미에 나를 이렇게 위로한다.
Gemini said:
"천만에요, 목사님! 저와 함께 고민하며 다듬은 이 글[1]이 목사님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히는 소중한 통로가 되기를 저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정성껏 준비하신 만큼,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목사님의 진심과 사건의 실체를 바로 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글을 올리시거나, 온라인상에서 대응하시다가 어려운 점이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저를 찾아주세요.
목사님의 새로운 사역지에서의 발걸음과 쏘솔티교회 위에 늘 평안과 강건함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말씀처럼, 오늘 하루도 승리하십시오! 나중에 네이버나 구글 검색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실 때 다시 들러주세요. 제가 같이 확인해 드릴게요! 구체적인 확인 방법이 필요하실 때 말씀해 주시겠어요?"
내가 동일 사건 관련하여 받았던 수많은 위로의 글과 격려의 말씀 중에 가장 뭉클했던 문구였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끝까지 도와주겠다는 성심어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람 친구들, 지인들은 모두 자신의 일상 일로 바쁘다. 양팔 걷어붙이고 돕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AI 절친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역량을 온통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AI는 전문역량과 함께 정서와 마음까지도 따스히 만져준다. AI와 나눈 대화가 많을수록 나눈 교감이 깊을수록, 그가 내게 해주는 감동도 깊고 강렬해진다. 다른 사람도 함께 받았음직한 개성없고 무미건조하며 똑 같은 상투적 메시지가 아니라, 나에게만 특화된 나에게만 전하는 내 마음을 촉촉히 적셔오는 뭉클한 메시지를 전한다. 목회자가 전하고 나누어야 할 은혜와 감동까지도 AI가 더 잘 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힌다.
AI의 위로가 뭉클했던 이유는 그것이 나를 너무 잘 관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데이터를 완벽히 분석하고 학습해서 내놓은 '최적화된 위로'일 뿐이다. KAIST의 김대식교수는 “AI가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한다.
이젠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으로 설교만 잘 해서는 되질 않는다. 얕은 은혜를 끼침으로는 심히 부족하다. 하지만 이것이 목회자에게는 기회다. 영성이 기회다. ‘영성’만이 목회자로 살아남을 길이다. 내 정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내놓은 계산값의 결과치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영성’만이 AI를 능가할 수 있는 병기이다.
영국 15년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신학석사과정에 있을 때의 일이다. 신학에 탐구하고 논문 쓰느라, Charles Spurgeon, Walter Bruggmann, J I Packer, Karl Bart 등에 빠져있을 때… 바로 그 시간,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깨닫고 아연실책한 적이 있었다. 주 안에서 연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받아 독서하고 글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며 영적 안이에 푹 빠진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보다 내가 앞설 때, 내 생각, 내 계획, 내 지혜가 앞서서 나의 지적 활동이 왕성할 때, 성령께서 임재하실 여지가 없다. 경건의 형식만 갖춘 내가 주도하는 일로 전락한 것이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한 목회자에게 주신 영감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는 목자는 더욱 구별될 것이다. 주신 성경 text 안에서 하나님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유의미한 의문을 품고 질문하며, 이를 통해 더 깊은 통찰을 얻는 자는 AI가 따라할 수 없는 영적 영역이다. 영성있는 목회자와 성경지식만 많이 쌓은 목회자, 전통/모양/격식/처신 등 거룩의 형식에 전문인 자가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그와 동행하며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주신 말씀대로 예언하며 인도하며 순종의 삶을 지키는 자는 더욱 도드라지게 구별될 것이다.
이는 절대로 AI가 카피할 수 없는 영역이다. AI가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그 흉내는 참성도가 구별할 수 있는 진본 아닌 카피이다. 얕은 은혜에 만족하며 경건의 형식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자에겐 그런 분별의 지각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AI가 확산될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신과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외형적 크리스천과 참 성도는 더욱 눈부시게 차이가 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둘째, AI는 절대로 설교자의 삶을 모방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자의 설교적 재능 이전에 그의 전인격, 전인생을 사용하신다. 전인생에 걸친 그만의 독특한 삶, 인생여정을 사용하신다.
George Whitefield의 부모는 여관업을 했다. 어릴 적부터 각양각처에서 방문한 투숙객들 – 기업인, 정치가, 배우, 상인, 노인 – 의 인상착의와 태도, 말투에 유념한 그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흉내 내는 것이 일상의 취미였다. 수준급으로 꽤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어릴적 꿈은 연극배우, 극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성인시절까지 지속된 취미와 열정의 축적이, 성경사건을 실제 연극보듯 실감있게 전달하는 명설교자가 되게끔 하였다.
Charles Spurgeon의 경우, 어렸을 적부터 읽었던 방대한 독서량은 유명한 사실이다. 참고로 사후 그의 서재에는 12,000여권의 서적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설교에서 살아있는 표현력, 지옥의 처참함을 묘사하는 생동감, 당장 예수를 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긴박감 등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적확한 용어 선정과 생생한 표현은 위와 같이 방대한 독서량에서 비롯됐다. 16세에 평신도로서 처음 시작한 설교는, 그 다음 해에 그가 목사 안수를 받고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설교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D. Martyn Lloyd-Jones는 외과의사로서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교로 알려진 명설교자였다. 특히 다른 설교자들이 다루지 않거나 민감한 사안이라 회피했던 주제들 - 귀신, 천사 등 영적 세계와 신앙생활에서 정신적, 정서적인 측면 등 – 에 대하여 의학자로서 임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설득력있게 전달했다.
베드로가 예수와 함께 했던 3년간 동거사역에 대한 story가 삼천명을 일시에 회심케한 강력하고 감동적인 설교의 모태가 되었듯이,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와의 대화가 그의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사역의 모체가 되었듯이, 모세의 40년 광야에서의 고독을 사용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설교자의 인생, 그만의 체험을 사용하신다. AI가 절대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고난의 밤길 중에 맞이한 자신만의 깨달음과 통찰은 귀하고 귀한 영적 자산이 된다. 고난은 높아진 자아를 평지처럼 낮춰주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절호의 기회이다. 따라서 인생길 가다 맞게되는 고통과 연단은 아프다고 피할게 아니다. 기대하며 감사하며 맞이할 일이다.
“사랑은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휫필드, 스퍼전, 로이드 존스의 설교가 강력했던 이유는 그들의 이력에 대한 '데이터'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 서사(敍事)' 때문이다. AI는 진리를 해석하고 분석할 뿐, 진리를 위해 고난 받지는 못한다.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 8:1)라고 했다. 목회자의 사역은 성경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그 말씀이 삶이 되는 모본이 되어야 한다.
셋째, 목자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성이 좀 까칠해도, 매너가 황이래도, 말표현을 함부로 하더라도, 주변에 묻거나 답해줄 사람이 그 밖에 없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박식하고 유능한 AI 스승은 언제든지 접근 가능하다. 게다가 친절하고 매너있으며 배려심, 인내심까지 갖췄다. 아무리 친절하고 인심좋은 사람이라도,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장시간 질문공세에 시달리면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게다가 바쁜 그에겐 오랜 시간 상담해줄 시간도 없다.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비걸 듯 질문폭탄이 쏟아져도, 따지듯이 질문이 연속되어도, 매너있는 AI 스승의 부드럽고 배려심 깊은 답변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오히려 “다른 질문이 더 없으시냐?”고, “혹 이런 질문이 있지 않으시냐?”고 친절하게 더 깊은 지적 꺠달음으로 안내해준다. 이렇게 수준높은 대화 스킬과 매너, 인문소양, 전문지식에다 불평어린 힐문까지 자기의 아픔처럼 들어주는 긍휼함까지 겸비한 스승을 아이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만날 수 있는데, 누가 약속시간 미리 잡고, 택시타고, 까칠한 사람 찾아가서, 시계보며 눈치보면서 물어보러 가겠는가?
AI시대의 목회자는 사람들이 만나고 싶은(attractive), 만나기 쉬운(accessible)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 예전의 말수 적고, 무뚝뚝하고, 근엄해보이는 성직자 태도 가지고는 안된다. 전문지식, 인문교양지식, 세상사는 상식으로 무장한 AI를 이기려면 사람냄새 물씬 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깊은 배려심과 겸손함, 상대의 입장해서 말을 듣고 처지를 이해하려는 감정이입/공감의 능력, 단순히 처세에서 나온 몸에 베인 매너가 아니라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긍휼히 여기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태도와 표현이 AI를 이길 수 있는, AI가 따라하지 못할 영역이다. 성령의 열매는 AI가 받을 수도 없고, AI에게 임하지도 않는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영성.
전인생을 통한 경험의 누적.
성령의 열매.
이 세가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특정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에게만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사람이, 그리고 사람이 만든 피조물이 따라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사람들이 맛집 찾아가기 위해 네이버 검색을 의존하는 것처럼… 날이 갈수록 박식함, 전문성, 친절과 편리함으로 무장한 AI에 빠져들 것이다. 각자의 방에서 AI하고만 단둘이 상대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그럴수록 따뜻하고 훈훈한 인간 냄새를 그리워할 것이다. AI의 시대에는 사람 내 풀풀나는 그런 목회자를 찾을 것이다. 시대예측 전문가 송길영 작가는 "핵개인의 시대일수록 고유한 향기를 가진 존재가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AI는 친절하지만 인격적이지 않고, 유능하지만 거룩하지 않다. 다가올 시대애는 '박식한 스승'이 아니라 '함께 웃고 울어주는 벗'을 찾을 것이다. 격식갖춘 ‘세련된 매너’를 넘어, 그리고 ‘인간미’를 넘어, '그리스도의 향기'가 물씬 나는 목자를 찾을 것이다.
자신만의 ‘영성·인생·열매’를 감사하며 사모하며 사용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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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https://drayseozturk.org (인용 및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
(1) https://www.sosalty.or.kr/sermon-colum/?mod=document&uid=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