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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숙사모와 대전 새누리교회]
등록일
2026-02-17 12:42
조회수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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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큰 일을 하는 사람보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안이숙사모가 남기신 명언이다.
고난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 지금.
20년전 읽었던 안이숙 여사의 저서『죽으면 죽으리라』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거부운동의 중심에 있던 한 여성의 처절하며 찬란한 신앙의 기록이다. "가장 약한 자를 통해 가장 강한 권력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위대한 기록이다. 고난 앞에 무릎 꿇고 싶은 순간,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다.
평양의 평범한 교사였던 안이숙은 일제의 강요 아래 모든 국민이 우상에게 절을 해야 했던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한다. 남들이 눈치를 보며 타협할 때, 그녀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일념으로 평탄했던 삶을 뒤로하고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나의 신랑은 오직 예수뿐!"이라는 고백과 함께 그녀는 일본의 심장부 도쿄로 건너가 일본 정계 인사들에게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선포하는 대담함을 보인다. 결국 고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일경에 체포되어 전설적인 '평양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가족과 헤어지고,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녀는 소망을 놓치 않으며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주님, 제가 죽어야 한다면 지금 죽겠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만큼은 굴복하지 않게 하소서!"
이 책이 내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던 것은…
형무소 안에서의 처철한 고문과 고통으로 가득 찬 절망적인 장소를 천국으로 바꾸어 놓는 기적과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6년의 옥고생활동안, 손발이 묶이고 온몸이 짓무르는 고문 속에서도 그녀는 오히려 옆방의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녀의 온유함과 강직함에 감동한 흉악범들과 일본인 간수들 마저 하나둘 변화되기 시작한다. 1945년 8월 15일, 사형 집행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기적처럼 해방이 찾아온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걸어 나온 그녀는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세상에 참빛을 전하며 여생을 값지게 보낸다.
“살을 파고드는 냉기, 얼음판이 된 감옥”
안이숙 사모의 옥고 생활 중 가장 처참했던 상황을 꼽으라면…
영하 수십 도를 넘나드는 평양의 겨울, 난방 시설 하나 없는 독방은 거대한 얼음 동굴과 같았다.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홑이불 한 장 없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내 살점은 바닥과 달라붙어 얼어버렸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살점이 찢겨 나가는 고통이 밀려왔다. 입술은 터져 피가 맺혔으나 그 피마저 금세 고드름이 되었다."
그녀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밤새도록 제자리 걸음을 걷거나, 정신을 잃지 않으려 찬송을 불렀다. 발가락은 동상으로 썩어 들어갔고, 구더기가 그 살점을 파먹는 것을 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그 시간은 육체적 고통의 클라이맥스였다.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은 위생과 식사의 문제였다. 좁디좁은 감방 안에 놓인 변통(똥통)은 제대로 비워지지 않아 늘 넘쳐흘렀다. 여름이면 그 오물 위로 수천 마리의 구더기가 기어 나와 그녀의 몸 위를 뒤덮었다. 오물과 식사, 인간성이 말살된 비참함 속에서 그녀는 이렇게 탄식한다.
“주님, 보시옵소서. 이 벌레들이 제 몸을 식탁 삼아 먹고 있나이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저 구더기들이 헤엄치던 그 손으로 일제가 던져주는 주먹만한 콩밥 덩어리를 받아먹어야 하는 나의 처지입니다. 짐승보다 못한 이 비참함 속에서도 나는 살기 위해 그 더러운 밥을 씹어야 했습니다."
“창살 안 감옥은, 주님께 집중케 하는 은혜의 울타리다.”
이토록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안이숙 사모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오물투성이 방을 '지성소(至聖所)'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구더기가 끓는 몸을 이끌고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 앉아 있으나, 내 영혼은 가장 높은 곳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있다. 이 감옥은 나를 가두는 창살이 아니라, 주님께만 집중하게 하는 은혜의 울타리다." 자신을 고문한 자들까지도 품으려 했던 그녀의 긍휼과 사랑은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장 어두운 감옥 안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던 하늘의 소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큰 일을 하는 사람보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광복과 함께 석방된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남편 김동명목사와 로스엔젤레스 한인침례교회를 개척한다. 그리고 수많은 전도/간증 집회를 가졌던 조국땅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대전 대덕에 새누리교회를 개척한다.
지금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이다.
안이숙사모와 연관성을 모르고 거주지에서 가까운 침례교회를 찾다 방문했던 교회이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내게 주신 은혜요, 내겐 특별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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