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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하는 자보다 끝까지 견디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등록일
2026-06-12 14:47
조회수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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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평범한 교사였던 안이숙은 일제의 강요 아래 온 국민이 우상에게 절을 해야 했던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한다. 남들이 눈치를 보며 타협할 때, 그녀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일념으로 평탄했던 삶을 뒤로하고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결국 그녀는 일경에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좁디 좁은 감방 안에 놓인 똥통은 제대로 비워지지 않아 늘 넘쳐흘렀다. 여름이면 그 오물 위로 수천 마리의 구더기가 기어 나와 그녀의 몸을 뒤덮고 살을 파먹었다. 한 겨울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그의 살점은 바닥과 달라붙어 얼어버렸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살점이 찢겨 나가는 고통이 밀려왔다. 입술은 터져 피가 맺혔으나 그 피마저 금세 고드름이 되었다. 인간성이 말살된 비참함 속에서 그녀는 이렇게 탄식한다.
“주님, 제가 죽어야 한다면 지금 죽겠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만큼은 굴복하지 않게 하소서!”
이 책이 내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던 것은…
처철한 고문과 고통으로 가득 찬 절망적인 수형 장소를 천국으로 바꾸어 놓는 기적과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6년의 옥고생활동안, 손발이 묶이고 온몸이 짓무르는 고문 속에서도 그녀는 오히려 옆방의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녀의 온유함과 강직함에 감동한 흉악범들과 일본인 간수들마저 하나 둘 변화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큰 일을 하는 사람보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메시지이다.
바울의 위대함은 끝까지 견디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것에 있다.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베드로 또한 수없이 반복되는 체포와 투옥, 그리고 갖은 매질을 당했다. 그는 자신의 고난 경험을 바탕으로,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권면했다(벧전 4:12-13)
우리는 체질적으로 고난을 싫어한다.
우리는 고난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할 수 있는 ‘능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의 지혜/실력/능력/재력/인맥을 총동원하여 피하려면 회피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교회는 고난을 혐오한다.
고난은 나쁜 것이고, 기도해서 척결해야 할 것이다. 기도를 통해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고난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기를 간구한다. 주님의 뜻은 상관없고 평안 속 안주를 희구한다. 세속적 가치와 혼합, 형식적인 예배, 사회적 불의가 만연하여 가장 영적으로 어두웠던 남유다의 멸망 직전, 영적 지도자들은 입을 모아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외치며 거짓 위로로써, 임박한 심판을 부정하고, 죄를 증폭하고, 회개의 기회를 빼앗았다.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8:11)”
수십년전 들었던, LA에서 목회하시던 전직 인기가수 이종용목사님의 간증이 떠오른다. 좋은 주택을 장인에게 상속받았는데, 집이 너무 좋아서 평안과 안락에 영적으로 안이해질 것이 우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주에 하루는 꼭 교회에서 숙식하면서 젊은 날의 영적 긴장 상태를 유지하려고 힘썼다고 한다.
주와 함께 하는 자의 영성은 간절히 간구하는 자에게서 나타난다. 인생의 어둔 밤길에 봉착한 영혼은 간절할 수밖에 없다.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우물가의 여인처럼 말이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실 수 없다. 최고의 재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자가 겸손하여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그런데 현대교회의 예배는 날이 갈수록 성대, 화려해지고 수준급 화음으로 명품화 되어 가지만, 간절함은 쇠약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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