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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가르치지 않는 죄]
등록일
2026-07-30 18:22
조회수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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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실이나 정황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반응, 올바른 처신, 바른 태도에 대해 배울 기회도 없었고 가르치는 이도 없어서, 실수했던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수년동안 진지하게 준비해왔던 인생의 진로를 가로막는 것은 분명히 가혹한 처벌 맞다. 문제의 근원은 이들을 바른 길로 계도하고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에게 있다고 본다.
각자가 보는 대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만나고, 임의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서 사회의 관습과 도덕과 윤리관, 상호 배려에 대한 입장은 각자 마다 이에 대한 기준과 생각이 다르다며 먹다 남은 닭뼈다귀 취급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각기 다를 수 있는 각자의 사고체계와 세계관이 사회적 규범과 예절과 매너보다 훨씬 높은 상석에서 대접받는다.
성인이 되기 전 청소년기는 아직 여물지 않은 시기이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 전 미성숙한 상태이다. 이미 성숙에 도달한 자는, 부모로서, 교사로서, 이웃 어른으로서, 주변의 미성숙한 자에게 성숙할 기회를 제공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상황과 시기에 맞는 가르침과 계도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미성숙자가 성숙으로 나아갈 기회를 어른의 안이한 무책임으로 박탈해선 안된다.
애써서 한 마디 했는데 듣지 않고 무시하는 청소년의 반응에 주눅이 들어서, 아이들에게 “꼰대” 소리 듣기가 두려워, 미성숙한 그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자유와 자의의 칼을 쥐어 주고 방임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아픔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아직 배워야 할 시기이고, 유혹에 약하고, 뭐가 옳고 그른 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나이임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경험 있는, 신뢰 가고, 책임감 있는 선배, 어른으로부터 듣고 싶어 한다. 조언과 팁을 듣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들이 어른으로부터 들어야 할 가르침의 내용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좋은 내용의 얘기를 그들이 경청하게끔 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꼰대”소리 듣는 것이다. 한 인격체로서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처한 상황, 나이, 시기에 맞게끔 예화와 적절한 비유를 가지고 수용하기 쉽게 전하려고 애쓰고, 사전에 심사숙고하여 말하기 보다, 감정껏 막 말한다. 그들이 정작 싫어하는 것은 전하는 이의 말투, 태도이다.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 혼내는 말투,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
글로벌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일을 잘 시킨다. 지시 받는 이가 기분 나쁘지 않게 일을 받도록, 지시를 하더라도 듣기 좋게 말한다. 지시 받은 이는 가슴이 벌렁벌렁하며 그 일을 하고프게 끔 일을 잘 시킨다.
얼마전 내가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주일예배는 전세대가 다 함께 드리는 특별한 예배였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라 다소 산만했다. 더욱이 내 옆에 앉은 남중학생 두 명은, 노골적으로 설교말씀에 관심을 끄고, 종이에 그림 그리고 그린 낙서에 서로 낄낄거리고, 스마트폰 채팅에 여념이 없으며, 그들이 발산하는 높은 데시벨의 소음은 나를 포함한 주변 성도들을 산만케 했다.
예배가 끝났다. ‘이들이 예배의 중요성에 대한 한마디는 듣고 가게 하리라’는 목적을 가지고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이들에게 친근히 다가가야 한다.’ 굳게 작정하고 그들과 내가 교감할 첫 단어를 찾았다.
“와~ 그림 잘 그리는데…”
“그거 그린 것 좀 봐두 돼?”
“난 이렇게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부럽더라!”
“넌 운동 잘하게 생겼다. 뭐 특별히 운동하는 것 있니?”
“저 테니스 쳐요!”
“와! 테니스… 그럼 레슨도 받고 있니?”
“네. 근데 무지 힘들어요.”
“너 테니스레슨, 힘든데 왜 하니?”
“테니스, 더 잘 치려구요.”
“넌, 테니스에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까 좋은 선수가 될 것 같다.”
“그럼, 오늘 교회에는 왜 왔니?”
“예배 드리려구요…”
“오늘 예배 잘 드린 것 같니?”
“ … …”
“예배 잘 드리고 싶은데, 옆에 친구가 자꾸 말 걸어요.”
“네가 교회 온 목적이 분명한 것처럼 예배를 잘 드리려는데, 친구가 방해되면 예배시간에만 잠시 따로 떨어져 앉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이렇게 대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교회학교부장, 담당 사역자, 사모님 등 많은 어른들이 주변에 모여 들었다.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다시 산만해졌다.
“자, 밥먹으로 가자!”하며
나는 서둘러 대화를 종결 지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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