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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묵과와 포용이 정답인가?
등록일
2023-10-01 10:21
조회수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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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본질은 '동성애'라는 원색적 이슈보다, 죄를 죄로 인식하는가의 문제이다. 동성애말고, 성경에서 죄로 엄금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동성애에 대해 침뱉고 능욕하고 피켓들고 항거하면서, 동시에 힘껏 탐욕하고 서로 미워하며 불평하며 질투나 하고 있진 않은가?
성소수자나 이들을 대하는 기독교인이나, 죄에 대한 인식, 죄를 죄로 여기는 깨달음의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다. 깨닫고 죄로부터 돌이키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이 세상에는 죄를 깨달은 죄인들과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는 죄인 두 부류가 있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의인 하나도 없다 (롬 3:10).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라고 하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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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전제가 잘못되면 결론이 이상하게 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누구는 성다수자, 누구는 성소수자 취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은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를 창조하시고,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창 2:18-24).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창 1:28). 모든 생물의 존재가치, 그 첫 번째는 번성(to increase in number)하는 것입니다(창 8:17).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이 수컷을 차지하기 위하여 다른 수컷과 싸우는 일은 없습니다. 수컷이 암컷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남자인데 남자에게, 여자가 여자의 몸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을 개인적 취향으로 허용한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엄연한 죄로 경고하고 계십니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 18:22)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6-27)
보수적 신학(신앙)관은, 성경을 무오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 그대로 믿음의 전형으로 삼고 지키려고 하는 입장입니다. 반면에 진보적 또는 자유적 신학(신앙)관은, “똑 같은 말씀이 어찌 2천여년이 지난 현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하며 합리적인 의심에서 비롯됩니다. 시대적/사회적/문화적/관습적 맥락(context)에 따라 다소 융통성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성경해석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할 현대인을 인본주의 신앙으로 이끄는 징검다리를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자기중심, 자기본위의 생각으로 가득 찬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뜨겁게 가열을 하고 있고요.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죄의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죄의 성립에 대한 규정도 하나님께서 이미 하셨습니다.
이들 사이에 인간의 판단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모기 턱수염만큼도 없습니다.
아담의 죄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자기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나름대로 해석한 죄(창3:1~6) 아닙니까? 어찌 한 나라의 법을 지켜야 될 백성이, 그 법을 공포한 왕의 권한을 넘볼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믿음의 성도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배제’와 ‘혐오’가 된다면 또 다른 죄를 잉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겠지요. 죄의 양상과 내용은 다르지만, 같은 죄인으로써 이들에게 비판, 비방과 미움의 태도를 갖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영국의 도심 길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할 때, 자신의 동성애 성향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젊고(20대 후반), 유능하고(IT회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훤칠하게 잘생기고, 연한 순처럼 온유하고 착해 보이던 그 친구에게 무어라고 얘기해주어야 할까요?
“너는 동성애 취향 때문에 교회에 못나가고 있고, 나는 하나님 말씀에 은혜 받고 지금 전도하고 있고… 그런데 너나 나나 그 분 보시기에는 다 같은 죄인이다. 나 또한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는 탐욕, 자랑, 비판, 불평… 이런 수 많은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매일 수도 없이 남에게 들켜가며 또는 남에 들키지 않게 은밀히 마음 속으로 죄를 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너 또한 예외 없이 사랑하심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시지만 네 안에 있는 죄는 미워하신다. 그 죄가 너와 하나님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이야. 그만큼 죄의 대가는 치명적이야(롬 6:23).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라고 하시지 않았니?”
진정한 사랑은 포용하고 묵과하는 것과 다르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친구가 사지로 향하는 불못으로 빨려가고 있는데 보고만 있겠습니까? 정서적으로 동감을 표하며 지지만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이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이 가고 있는 길에 멈추어 서서, 돌이키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도록 주님의 말씀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처럼 주님의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인은 동시에 보냄을 받은 자(행 1:8)이기도 합니다. 능욕과 침뱉음 받고, 갖은 수모와 함께 죽으실 줄 아시면서도 이 땅에 오신 뜻을 항상 마음 속에 새기고 그 뜻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 거룩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은 죄악과 ‘포용’의 이름으로 화평할 수 없습니다. 더러움과 떨어져야 순결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삶과 전문영역에서 귀감이 되어주신 선배님께서, 크리스천으로서 믿음의 표준이 되어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