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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진정 사랑한다면
등록일
2023-10-01 10:30
조회수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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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크리스찬들도 늘 하는 표현이 있다. 골백번도 더 했을 것이다. ‘사랑’이다.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서로 교제하고 하루를 정리한다. 교회마다 작건 크건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나의 지역교회는 완전한 하나님의 몸이지만, 그곳에 모여있는 군상들은 하나같이 하자 많은 인간들인지라, 실수와 문제와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교회 내의 갈등의 정도가 심할수록, 양쪽 다 심하게 나오는 이유가 똑같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교회의 일에 열심이고, 열심인 만큼 그 갈등도 폭발적으로 강렬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토록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의 속내가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7)
얼마전 TV에서 소년원에 관련된 특집다큐멘타리를 본 적이 있다. 한 소년은 일찍 부모를 잃고 16년간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왔다. 그래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다. 중죄를 짓고 소년원에 들어왔지만, 출소하면 다시는 죄짓지않고 착실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꿋꿋하다. 자기만 바라보고 살아오셨던 할머니를 향한 사랑이 남달리 애틋하기 때문이다. 그가 새 삶을 살겠다는 견고한 다짐의 원천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예수의 사랑을 모르고서는, 자신의 외아들을 사지로 보내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애틋함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소망도 무가치하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다. (고전13:13) 그래서 더욱 큰 은사, 사랑을 사모하라고 하신다. (고전12:31)
수원사업장에 출퇴근하며 직장생활하던 시절, 퇴근버스를 타고 양재역에 내리면 혼잡한 대로보다 한적한 골목길을 걸어서 귀가하곤 했다. 골목길 전봇대에 붙어있던 사채업자 광고스티커. 마른 지푸라기라도 붙잡을 물에 빠진 사람처럼, 당장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유혹하는 현란한 문구로 가득찼다. 돈 때문에 딱한 처지에 있는 서민의 약점을 악용하여 무려 연리 8000%에까지 달하는 살인적인 이자를 받아 챙기는 고리대금사채업은 분명히 불법이며 악독하다. 광고문구 맨아래에 이렇게 써있었다. “※주일은 쉽니다.”
수많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 권력형비리를 저지른 고위공무원, 정치인들… 검경찰이 작성한 수사일지를 보면 그들의 일요일은 유난히 특별한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교회예배참석”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가 부흥만 된다면, 거룩에 약간 흠집이 생기더라도 문제 없어들 하는 것 같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사역, 사람들만 꾸역꾸역 모여준다면 거룩에 균열이 가더라도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을 외치며 의연히 제 갈 길 꾸역꾸역 가는 것 같다. 죄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라면서 열심히 갈등하고 마침내 거룩의 질서를 잃고 서로 멱살잡고 싸운다. 결국은 주님앞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법정에 도움을 청한다. 하나님께서 앉으실 거룩한 자리에 어느덧 날이 날카롭게 선 이성과 논리와 비방으로 가득찬 인본의 마음이 자리를 잡는다.
짠 맛을 잃은 소금, 거룩의 맛을 잃은 성도, 거룩의 빛을 잃은 교회.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가,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지도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마5:13-15), 교회를 세우신 그분께 무엇이 될까? 나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큰 교회를 섬기는 성도일수록, 더욱 더 영적긴장의 고삐를 죄고 주님과의 관계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 거룩하신 주님께만 집중해야할 본질적 영적생활에, 본의 아니게 영향을 미치는 기타 비본질적 요소들이 너무 많다. 성장, 부흥, 목표, 달성, 부서, 조직, 위계, 예산, 평가, 계획, 행사, 프로그램, 의전, 보고, 관리, 매입, 투자, 전략... 성경에는 있지않은 생경한 단어들이 교회의 일상 업무가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조직을 관리하려면 당연히 요구되는 세상적 기술(Secular Skills)이 기도제목이 되어버렸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장 전체를 통틀어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권능에 대하여 자세히 열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행하여도, 주를 향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예언하는 능력을 갖추고,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아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찌라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으며 (고전13:1-3)
‘사랑’이란 단어는 신자들의 입에서 참으로 쉽게 나온다.
‘예수사랑’. 마치 자신이 구사한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고 입밖에 내어 뱉는 나이 어린 꼬마 철부지처럼, 표현한 말과 실제가 다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거룩성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벧전1:16)
능력, 헌신, 봉사, 구제, 사역, 부흥… 다 좋지만 이것들 다 놓쳐도 거룩만은 끝까지 붙들어야한다. 아무리 성경을 36독을 하고, 신구약 구석구석을 훤히 꿰뚫고, 당대 최고 의술도 포기한 병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행하여도, 거룩을 놓치면 주님을 잃는 것이다. 주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히려 이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1-23) 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자질, 능력 같은 것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오히려 인생에, 심지어 교회 양적성장에 별로 도움 안되는 힘없고 무르고 약하디 약한 속성일 수 있다.
사랑하는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잡고 잘 살겠다는 그 소년원 수감자처럼, 주님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거룩해야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참그리스도인이 내어뿜는 거룩의 향취를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거룩하고 봐야한다. 거룩의 끝자락이라도 잡으려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야 한다.
할머니를 향한 진정한 사랑 속에 파묻힌 손자는 할머니께서 하신 당부의 말씀, 마음에 새겨 평생 잊지 않고 준행한다. 사랑이 듬뿍 담긴 그녀의 말씀, 마음 속 깊이 새겼기에 그녀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힘쓰고 용쓰지 않아도 된다. 애틋한 사랑이 없다면 그것 하나하나가, 잔소리가 되고 성가신 짐이 되고 부담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주신 말씀 “지켜야지! 지켜야지!”하며 힘쓰고 애쓰고 노력해서 지켜야 되는 율법이 된다.
눈부시게 새하얀 웨딩드레스로 거룩히 단장한 신부가 신랑오시기를 기다리며 자신을 순결히 지키듯이, 더러운 곳 멀리하고, 더러운 때 묻히지 않고, 더러운 생각 품지 않으며, 상스러운 세상의 언어 입에 담지않으며, 세상의 화려하고 아름답고 고급스럽고 힘있고 찬란한 정신과 문물에 물들이지 않으며, 지혜로운 다섯 신부처럼 깨어있어서 경건의 기름 넉넉히 준비해서 거룩의 불 꺼뜨리지 않고 신랑 예수를 기다리는 것이 참성도의 삶이요 참교회의 본질이며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