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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등록일
2023-10-19 23:22
조회수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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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우리 신앙인들이 납득하기 쉽지 않는 ‘저주시’들도 있다. 시인은, 억압하는 자들 아래서 고통 받는 자신의 아픔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악인들을 심판해달라고 간구한다. 대표적으로 시편 109편은 크리스천으로서 참으로 입에 주어 담긴 힘든 저주의 내용으로 가득 찼다.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7)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8)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9)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0)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11)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시며 (12)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13)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14) …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약의 가르침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접하기 힘든, 원망, 불평과 상대의 저주를 구하는 시편들도 우리에게 교훈적인 측면이 있다. 시편 3:1-2를 예로 든다면, 저자는 자신의 주변에 적들이 너무 많으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도 소용없다면서 좌절케 하는 이들이 많다며, 참으로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고 탄식을 한다. 그러나 결론으로써,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를 신뢰한다. 시편 109편도, 예외 없이 상대가 잘못되기를 기도했지만, 주님을 신뢰하며 그의 구원을 향한 갈구와 함께 종결된다.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 (30)
저가 궁핍한 자의 우편에 서사 그 영혼을 판단하려 하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31)
Singer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 나는 기도할 뿐이다”(1) 고 고백했듯이 시편에서의 투덜댐, 불평, 분노, 탄원들은 더 이상 나쁜 쪽으로 발전되지 않고, 오히려 절대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확신으로 승화되는 전환을 가져온다.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속담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들을 도와주신다”는 사실에 굳건하고 변치 않는 신뢰가 있다.
시편에서 다루는 ‘고통의 문제’는, 우리에게 고통 앞에서 그저 참고 인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처리하는 다른 방법도 있음을 제시한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 불평, 미움, 저주의 감정을 주님 앞에 벌거벗고 다 드러낸다. 종교적으로 습관에 밴 거룩의 치장이 전혀 없다. 솔직히 나도 가끔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쌍시옷 소리가 울컥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누구를 OO하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던 적도 있다. 단지, 신앙심으로 그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내뱉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그것을 주님 앞에 가져다 아뢴다는 것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시편의 시인은 다른 방법으로 그 더럽고 악하고 추한 감정을 배설한다. 그 악한 저주의 말을 사람 앞으로 가져가지 않고, 주님 앞에서 솔직히 거리낌 없이 토해낸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구한다. 우리는 이미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는 신약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시인처럼 원수를 향한 거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시편에서 최소한 도전 받는 것이 있다.
나의 답답한 하소연, 끝까지 들어줄 사람 이 세상에 누가 있으랴? 답이 없는 갑갑한 사연일수록 아무리 친한 친구도 오랜 시간 인내하며 들어주는데도 한계가 있다. 시인에게는 절대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솔직히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교제가 있다(2). 그리고 그 거친 마음, 악한 말이라도 끊지 않고 다 들어 주시는 친한 벗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있다. 이것이 시편의 ‘저주시’가 우리에게 참 신앙에 대한 도전을 주는 이유이다.
(1) Issac Bashevis Singer의 말을 Eugene A. Peterson, Answering God: The Psalms as Tools for Prayer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9), 36에서 재인용.
(2) 이에 대한 나의 심정을 기록한 글은 아래 참조: https://www.facebook.com/kanghun.lee/posts/pfbid09a7LQwgTXEVPv3FbUFsWCzyJgXvmmPqWLYVQPQGp3Tws2jJQ1ASb94abcMppKjzzl
* image from https://bibleversesto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