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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집으로
등록일
2023-11-20 11:37
조회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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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한국에 있는데… 그 집은 남에게 전세주고 나왔지만 그 집이 바로 그리운 내 집인데… 한국을 떠나 영국에 부임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렌트로 살고 있는 런던 집이 내 ‘집’이라니… 그 곳이 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내 ‘집’이라니… 실소(失笑)가 절로 나왔다.
세계 어느 도시에 있던, 어떤 장소에 있던, 보고픈 아내와 아들들이 있는 곳이 바로 내 ‘집’이다. 그 곳에는 참 쉼이 있고, 비빌 언덕이 있고,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훈훈한 곳이다. 평안과 안식을 주는 물리적 공간이자, 위안과 포근함을 주는 정서적 공간이다. 경제적 거래가 주는 가치를 중심으로 일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무관심과 냉담, 이기와 경쟁이 가득한 곳으로부터 이동하여 깊은 안식의 숨을 들이킬 수 있는 마음의 쉼터이다.
한 부잣집 아들이 집을 떠나,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탕진하며 세월을 보내다 결국 남의집 머슴살이를 하며 돼지 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에게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허락되지 않았다. 늘 허기지고 처량하고 고독한 신세. 어찌 아버지의 사랑과 위로와 보살핌이 있는 ‘집’이 사무치게 그립지 않겠는가?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17-20)
영국에 15년 살면서, 나에게 그런 집이 또 하나 있었다. 분당에 부모님께서 사시던 집. 객지생활이 오랠수록, 심신이 지쳐갈수록, 위로와 충전이 필요할수록 그 집이 그립다. 어머니 밥이 그립다. 내 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셨지만, 절제의 사랑은 누구 못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달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가에 찾아 뵈면, 그 분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자신하는 말씀들을 적당한 때에 적당한 빈도로 하셨다. 경황없다는 이유로 처신과 처세의 천박한 습관에 발을 담그려 할 때면, 육중한 인생의 무게 아래 그 분의 말씀이 기본으로 나를 돌려놓았다.
그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서는 서울 형님댁 인근으로 이사하셨다. 영국에서 그녀의 소천 소식을 듣고 그 ‘집’으로 달려갔다. 한여름 서울, 작열하는 햇살은 독수리 부리마냥 내 살을 사정없이 쪼아댔다. 온몸을 땀으로 적신 나는, 어머님댁 아파트 문밖에 섰다. 벨을 눌렀다.
“강헌이 왔니?”
그 날 따라, 그 정겨운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5분이 지나고, 1시간이 흘러도…
부모께서 생존해 계시지 않으니, 이제 그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마음 속에만 있을 뿐이다. 조금 더 있으면 나에게, 아내와 아들들이 살고 있는 ‘집’의 개념이 달라질 것 같다. 내년 2월이면 아내도 한국으로 돌아와 같이 교회개척을 위하여 동역하게 된다. 아들 둘은 런던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또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자신들의 ‘집’을 세우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겠지? 이젠 아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다. 가급적 아들들이 자주 연락하고 소식도 전해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 Photo taken in Praha, Aug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