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 COLUMN
설교/컬럼
목사 칼럼
생명애착
등록일
2023-08-22 15:48
조회수
361
![]()
최근 거듭된 애끊는 사연으로 인해 '자살'을 생각한다는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어느 목사님 관련 기사로 뜨거웠던 적이 기억난다. 자살에 관련된 나의 생각만 나누고 싶다. 그 목사님을 잘 모르므로, 지금 쓰는 글이 특정한 개인에 관련된 추측, 견해로 해석이 안되었으면 한다. 내 어머니도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다가 식욕부진에서 비롯된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객관적 사인(死因)은 대장암이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울증'이었음을 나는 잘 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죄가 있어도 살려고 하는 자는 산다. 가인이 동생을 죽인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니 하나님은 그에게 표를 주어 살려주셨다. 평생 강도 짓만 일삼은 십자가에 달린 그도 생명애착을 외쳤을 때 "낙원에 있으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창녀도, 세리도, 혈루병 여인도 삶에 간절한 애착을 보였을 때 살려주셨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왜 만드셨을까? (신4:41-3)
도피성을 향하여 뜀박질하는 살인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 뒤에는 “저 놈 잡아라!” 외치며 달려오는 살인 당한 자의 배우자, 혈기왕성한 남동생들, 동네 장정들, 그리고 병졸들이 따라오고 있다. “잡히면 뼈도 못 추리고 죽는다!”라는 일념으로 달린다. 추격하는 자들과 간격은 좁혀오는데 도피성까지의 거리는 아직도 멀다. 숨은 가빠오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그래도 달리는 수밖에 없다.
심장은 터져 나갈 것 같고...
손가락 까닥할 힘도 없고..
복수하려는 자의 창 끝은 이제 도망자의 그림자를 밟고 있고...
그래도 달린다.
죽기는 싫다.
더 힘을 내자.
그럼 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죄의 삯인 사망이 끔찍하기 때문에, 사망의 원인인 죄를 두고 뉘우치는 회개가 그리도 중요하다. 죄가 가져올 결과가 얼마나 참혹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발가벗기우고 몸이 찢기고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피를 쏟으며 죽게 할 수 밖에 없었던가? 그렇게 흘리신 피의 은혜가 죄에서, 사망에서, 영멸에서 우리를 살리셨다.
자살은 그 은혜를 무가치하게 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 내 안에 계신 주인분 말고는 그 누구도 맘대로 할 수 없다. 주인이 아닌 내가 주인 소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은 불신앙이다.
물론 세상사는 것 만만치 않다. 잘 안 풀리고, 분통 터지고, 집어치우고 싶고... 이런 생각 하루 수십 번도 더 하는 성질 있고, 연약한 우리들이다. 그 버거운 인생의 수많은 숙제들을 혼자 풀어 나가야 되고 역부족임을 느낄 때…
삶의 고충, 사람으로부터의 상처, 드러낼 수 없는 문제들 가슴 터놓고 얘기할 상대도 없고, 고독과 우울의 검은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진다. 한 사람의 자살 원인을 돌아보면 그 사람이 왜 그리 했는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해는 정도(degree)의 차원이고 심판은 많고/적고의 정도가 없다. 차갑거나 덥거나, 좌냐 우냐, 영멸인가 영생인가?의 문제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그래서 정신병, 우울증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질병이다. 생명을 지향하는 마음을 자신 스스로 품고 지키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문둥병의 경우, 몸은 썩어도 영혼은 지킬 수가 있다. 우울증은 영혼 간수하기가 정말로 어려워진다. 더 이상 커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육신이 썩거나 암이 생기면 야단법석인데, 우울증에는 겉보기 멀쩡하다고 손 놓고 있으면 절대 안된다. 본인과 가족과 주변이 사랑과 관심의 생난리를 펴야 한다.
022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