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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보다 ‘왜?’]
등록일
2026-03-06 08:17
조회수
114
최근 2년간 내게 닥친 - 아직 끝나지도 않고 작동하고 있는 - 고난, '창원 강아지 사건'으로 인해 얻은 영적 유익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내게 임한 고난의 뜻을 되씹으면서, 새삼 깨닫게 해주신 '내 존재의 의미', 그리고 이를 통한 생명수처럼 넘쳐나는 은혜의 봇물이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요 11:4)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도 중병이나 재산적 손실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갈등과 같은 고난이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고난에 대한 면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자에게 임한 질병이나 시련이 곧 하나님 사랑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함께 하심을 드러내기 위한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삶에서 막아선 장벽이나 아픔을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지에 몰입하는데… 그 보다 ‘왜?’ 이 고난을 허락하셨을까? 이 고통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주님의 시각에서 보면 주님께서 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일이다. 주님의 하실 일을 축소하고 자신의 시야에 머무는 자는 시련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의 생각, 능력, 동원 가능한 주변의 도움에 몰입한다.
고난을 만나면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어떻게든 자기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서,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이것은 ‘왜?’ 입니까? ‘무엇’ 때문에 이 위경이 제게 임하도록 허락하셨습니까? 이렇게 묻고, 깨닫게 해주신 주님의 뜻에 따라 기다리며, 소망을 품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래야 언제 끝날지도 모를 힘들고 모진 시간 버틸 수 있다. 넉넉히 버틸 수 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버니 나사로가 ‘어떻게’든 낫기를 바랬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나사로에게 임한 병의 ‘의미’를 강조하신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우리의 존재 의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사 43:7) 아닌가?
고난 중에 닥친 고통의 의미를 아는 것은,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요
자신 존재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 축복이요
밭에 감추인 보화를 캐는 은혜이다.
030626
*Image from https://www.hccmobile.org/ (인용 및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요 11:4)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도 중병이나 재산적 손실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갈등과 같은 고난이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고난에 대한 면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자에게 임한 질병이나 시련이 곧 하나님 사랑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함께 하심을 드러내기 위한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삶에서 막아선 장벽이나 아픔을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지에 몰입하는데… 그 보다 ‘왜?’ 이 고난을 허락하셨을까? 이 고통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주님의 시각에서 보면 주님께서 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일이다. 주님의 하실 일을 축소하고 자신의 시야에 머무는 자는 시련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의 생각, 능력, 동원 가능한 주변의 도움에 몰입한다.
고난을 만나면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어떻게든 자기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서,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이것은 ‘왜?’ 입니까? ‘무엇’ 때문에 이 위경이 제게 임하도록 허락하셨습니까? 이렇게 묻고, 깨닫게 해주신 주님의 뜻에 따라 기다리며, 소망을 품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래야 언제 끝날지도 모를 힘들고 모진 시간 버틸 수 있다. 넉넉히 버틸 수 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버니 나사로가 ‘어떻게’든 낫기를 바랬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나사로에게 임한 병의 ‘의미’를 강조하신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우리의 존재 의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사 43:7) 아닌가?
고난 중에 닥친 고통의 의미를 아는 것은,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요
자신 존재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 축복이요
밭에 감추인 보화를 캐는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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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https://www.hccmobile.org/ (인용 및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