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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면전에서: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등록일
2023-09-30 23:30
조회수
325
(성경 본문) 민수기 17:1-1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별로 하나씩 지팡이를 취하라 하시고, 레위의 지팡이에는 그 두령으로서 아론의 이름을 쓰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특별히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초자연적인 현상이 임하게 하시어, 아론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영적 지도자임을 강조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모세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그치게 하겠다고 덧붙이신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심지어 애굽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며 그들의 지도자에게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진노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민 14:11)
이들이 항거하고 대든 대상은 모세와 아론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에게 반항하고 대드는 것은, 바로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대적하고 반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자신을 멸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신다. 특히 그가 기름 부으신 종, 사역자에 대한 원망, 부질없는 말, 태도는, “자신을 멸시한 것”이라 간주하시며 극도로 싫어하신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따라서 아론의 지팡이를 보는 사람은 죄악과 불순종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원망의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리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기 때문이다.
오늘날 원망과 불평과 투덜대는 것이 참으로 일상화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걸핏하면 누구 탓, 부모 잘 못 만난 흙수저 탓, “이게 나라냐?”하면서 나라 탓, 시대를 잘 못 타고난 팔자 탓… 자기 중심적 사고가 팽배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매우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다. 그것도 객관적으로 하면 그나마 좀 낫겠는데, 자기 중심적으로 상황을 보고 자기 버전으로만 해석하고 분석하려 한다. 누구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고…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고… 하지만 그 문제의 한가운데에서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모른다. 이를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으로 공통된 반응은, 죄에 찌들은 자기의 본 모습을 보고 자신 안에 있는 참혹한 죄악을 깨달은 후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여러분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앞에선 구약의 성도들처럼.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서서 두렵고 떨림으로 대면하는 경외의 시간을 하루 바쁜 일과 중에서 과연 얼마나 체험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별로 하나씩 지팡이를 취하라 하시고, 레위의 지팡이에는 그 두령으로서 아론의 이름을 쓰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특별히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초자연적인 현상이 임하게 하시어, 아론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영적 지도자임을 강조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그와 모세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그치게 하겠다고 덧붙이신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심지어 애굽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며 그들의 지도자에게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진노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민 14:11)
이들이 항거하고 대든 대상은 모세와 아론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에게 반항하고 대드는 것은, 바로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대적하고 반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자신을 멸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신다. 특히 그가 기름 부으신 종, 사역자에 대한 원망, 부질없는 말, 태도는, “자신을 멸시한 것”이라 간주하시며 극도로 싫어하신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따라서 아론의 지팡이를 보는 사람은 죄악과 불순종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원망의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리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기 때문이다.
오늘날 원망과 불평과 투덜대는 것이 참으로 일상화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걸핏하면 누구 탓, 부모 잘 못 만난 흙수저 탓, “이게 나라냐?”하면서 나라 탓, 시대를 잘 못 타고난 팔자 탓… 자기 중심적 사고가 팽배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매우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다. 그것도 객관적으로 하면 그나마 좀 낫겠는데, 자기 중심적으로 상황을 보고 자기 버전으로만 해석하고 분석하려 한다. 누구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고…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고… 하지만 그 문제의 한가운데에서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모른다. 이를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으로 공통된 반응은, 죄에 찌들은 자기의 본 모습을 보고 자신 안에 있는 참혹한 죄악을 깨달은 후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여러분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앞에선 구약의 성도들처럼.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서서 두렵고 떨림으로 대면하는 경외의 시간을 하루 바쁜 일과 중에서 과연 얼마나 체험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