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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변명이 일을 그르친다

등록일 2025-01-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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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변명이 오히려 매를 부른다."

다른이가 결정적으로 일을 태만히 했거나, 지원이 절실했던 옆부서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던가,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인데, 나 혼자 비난의 덤터기를 뒤집어 쓰는 것이 못내 억울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이런 자리에서 입바른 변명을 한다. 그리고 열에 아홉의 경우, 이러한 변명은 자신을 향한 비난의 독소를 더욱 자극한다. 본인보다 십수년 산전수전 다 겪어본 상사가 왜 정황을 모르겠는가? 변명 안해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번 일을 통해, 부하직원이 더 클 재목인줄을 보고 싶어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호랑이 상사의 포효하는 분노의 예봉은 무디어지고 부드러워진다. 불신의 눈초리가 신뢰의 시선으로 바뀐다.

자신을 치러 코앞에까지 쳐들어온 블레셋 군사들 앞에서, 사무엘 제사장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급한 마음에 사울 자신이 번제를 드리고 만다(삼상 13:5-15). 이윽고 도착한 사무엘에게 구차한 변명을 하며, 세 부류에게 탓을 돌린다.

1)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2) 사무엘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3)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삼상 13:11)
“그래서 이렇게 당신 대신 번제를 올린 것입니다.”

이렇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마음에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했더라면…
그의 왕위는 온전했을런지 모른다. 섣부른 변명이 더 큰 매를 부른 것이다.
신약에서도 섣부른 변명으로 신세 망친 대표적인 경우가 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 25:24-25)

그는 주인을 심하게 오해했다. 심지도 안고 씨뿌리지도 않았는데도 거기서 수확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이 굳은(σκληρός; 스클레로스; 기대수준이 높은, 비위 맞추기가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주인이 실제로 그러하더라도, 하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아주 기분 상할 표현이다. 하지만 그 이전 다섯, 두 달란트 받았던 자들에게 취했던 주인의 행동을 살펴보면, 이 자가 말한 “굳은 사람”표현은 매우 왜곡/과장 되었다. 게다가 그가 한 변명은 앞뒤 두서가 전혀 맞지 않는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기를 바랄 정도로 기대 수준이 터무니 없이 높은 주인이라면, 주인에게 혼나지 않기위해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이든지를 해서 그 돈을 불리는 것이 경우가 맞지 않는가? 그런데 그는 그것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변명하는 자의 전형적인 증후이다.

앞뒤 논리가 맞지 않아도, 섣부른 변명이라도 해서… 자신을 두둔하고 지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상대방의 입장, 동료들이 하는 상식적인 태도… 이런 것들엔 아랑곳 하지도 않는다. 이 하인은 여태까지 주인과 나눈 대화에서 느낀 바도 깨달은 바도 없다. 듣지를 않는다. 목이 곧은 자이다. 자신의 고집대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염소이다.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 보신(保身)만 챙기는 마음밭이 단단한 자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혼란스럽고 많이 아프다. 병이 매우 깊고 위중하고 심각하다.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이념, 정치, 경제, 사회… 거의 모든 면에에서 건강한 중간은 희미해지고 미약해지면서 양극으로만 치닫고 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않는다. 반대를 위한 반대밖에 없다. 상식으로 움직여지는 사회가 아니다. 억측과 왜곡과 과장이 난무하며 이러한 억측과 왜곡과 거짓이 세를 얻고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본문의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자기만 보전하면 된다며, 어떤 억지 주장도, 거짓도 왜곡도 마다않는 사회/정치 지도자들이 너무나 많다. 이기적, 보신주의 염소들이 여기저기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하루 빨리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로 회귀하기를 간구한다. 아무리 멱살잡고 싸웠던 철천지 원수, 미운 상대라도 건강한 상식을 가지고 올바른 말을 했으면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는 상식이 있어야 한다. 내 아들들이…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세대가 사회 중추가 될 가까운 미래엔… 자신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상대방과 이웃을 배려하는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훈훈한 사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이 혼란스러운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에 우리 믿는 크리스천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뒤로 물러나고 성실과 정직이 거리에 엎드러진 것을 우리가 두 눈 똑똑히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세상의 정의와 공의와 성실의 표준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들이 똑바르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닌가? 우리 믿는 자들부터 하나님 공의의 다림줄대로 반듯이 지켜행해야 어두운 사회의 등불이 되고, 갈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에게 표준이 될 것 아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무가 한국 역사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좋은 대학 가고, 훌륭한 배우자 만나고, 취직하고, 승진하고,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다. 비겁하게 변명하지 말고, 왜곡하고 거짓하지말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정오의 해와 같이 빛내는 삶이 되기를 예수이름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