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 COLUMN
설교/컬럼
설교
오늘이라 일컫는 시간에
등록일
2023-08-22 16:23
조회수
346
(성경 본문) 히 3:12-14
우리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를 꿈꾸며 갈망하지만, 막상 그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이전 단계보다 훨씬 더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전 단계에서 안 보이는 것이 보이게 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커다란 고민으로 다가온다. 행복, 안락, 평안을 향해 달려가던 삶은, 세월이 흐르면 더 좋은 삶이 올 거라고 꿈꾸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날이 갈수록 힘들어 진다. 이제 고생문을 지났다고 안도의 가뿐 숨을 내쉬지만 그것보다 더 독한 고생문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살아 온 세월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더 큰 부담, 더 무거운 책임, 고민, 염려, 걱정이 엄습해온다.
은퇴할 때쯤 되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때가 좋았지!”하며 과거로 회귀하고자 한다. 동창모임, 이전 직장동료들과 모임에 참석하면, 다 “그때가 좋았지!”하며 젊은 날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를 서글프도록 아쉬워한다. 원기충만, 패기만만했던 시절의 사회생활. 대학로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찾으며 앞으로의 미래를 새파랗게 색칠했던 대학시절. 특히 입시걱정, 취업걱정, 모든 번민과 염려에서 자유로왔던, “엄마! 걱정이 뭐예요? 염려가 뭐예요?”했던 순수하고 철없던 코흘리개 미취학 어린시절이 몹시도 그립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릴 적, 중고등시절, 대학시절에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다음 단계의 삶을 다 겪어봤는데, 막상 이들을 다 경험해보니 과거의 삶들이 그것이 오래되면 될수록 더 그립고 아쉽다.
왜 어린 시절, 과거의 그때, 그 당시, 그 시간의 소중함을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하고 은퇴할 때쯤 되어야 깨닫는가? ‘오늘’을 영어로 ‘present’라고 말한다. 오늘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도 히브리서 저자를 통해 오늘이라는 지금 현재에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지키라고 강조하시지 않는가? 내게 참으로 후회되는 일은 이 오늘이라 일컫는 귀중한 시간들을 좀 더 음미하며 감사하며 누리며 살지 못했던 것이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오늘’이라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며 그 귀한 선물을 누리며 살아가는 길에 있다. 좋은 것으로만 채워도 아까운, 이 귀중한 오늘이라 일컫는 시간을 우리는 불만족, 불평, 원망, 분노, 한숨, 자조, 후회, 여러 불순한 것으로,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채 채워나간다.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줄 모르면, 환경에 영향 받으며 주어진 상황에 지배 받으며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원망, 불평의 해독은 바로 감사이다. 감사의 내적 고백이, 감사에 대한 적극적 표현이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 일컫는 소중한 바로 이 시간을 지켜내는 유일한 최고의 방법이다.
우리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를 꿈꾸며 갈망하지만, 막상 그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이전 단계보다 훨씬 더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전 단계에서 안 보이는 것이 보이게 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커다란 고민으로 다가온다. 행복, 안락, 평안을 향해 달려가던 삶은, 세월이 흐르면 더 좋은 삶이 올 거라고 꿈꾸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날이 갈수록 힘들어 진다. 이제 고생문을 지났다고 안도의 가뿐 숨을 내쉬지만 그것보다 더 독한 고생문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살아 온 세월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더 큰 부담, 더 무거운 책임, 고민, 염려, 걱정이 엄습해온다.
은퇴할 때쯤 되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때가 좋았지!”하며 과거로 회귀하고자 한다. 동창모임, 이전 직장동료들과 모임에 참석하면, 다 “그때가 좋았지!”하며 젊은 날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를 서글프도록 아쉬워한다. 원기충만, 패기만만했던 시절의 사회생활. 대학로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찾으며 앞으로의 미래를 새파랗게 색칠했던 대학시절. 특히 입시걱정, 취업걱정, 모든 번민과 염려에서 자유로왔던, “엄마! 걱정이 뭐예요? 염려가 뭐예요?”했던 순수하고 철없던 코흘리개 미취학 어린시절이 몹시도 그립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릴 적, 중고등시절, 대학시절에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다음 단계의 삶을 다 겪어봤는데, 막상 이들을 다 경험해보니 과거의 삶들이 그것이 오래되면 될수록 더 그립고 아쉽다.
왜 어린 시절, 과거의 그때, 그 당시, 그 시간의 소중함을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하고 은퇴할 때쯤 되어야 깨닫는가? ‘오늘’을 영어로 ‘present’라고 말한다. 오늘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도 히브리서 저자를 통해 오늘이라는 지금 현재에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지키라고 강조하시지 않는가? 내게 참으로 후회되는 일은 이 오늘이라 일컫는 귀중한 시간들을 좀 더 음미하며 감사하며 누리며 살지 못했던 것이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오늘’이라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며 그 귀한 선물을 누리며 살아가는 길에 있다. 좋은 것으로만 채워도 아까운, 이 귀중한 오늘이라 일컫는 시간을 우리는 불만족, 불평, 원망, 분노, 한숨, 자조, 후회, 여러 불순한 것으로,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채 채워나간다.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줄 모르면, 환경에 영향 받으며 주어진 상황에 지배 받으며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원망, 불평의 해독은 바로 감사이다. 감사의 내적 고백이, 감사에 대한 적극적 표현이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 일컫는 소중한 바로 이 시간을 지켜내는 유일한 최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