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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은 내면의 각성에서부터]
등록일
2026-04-29 18:31
조회수
130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신약학자 제임스 패커는 위의 성경구절을 신약교회에 최초의 부흥을 불러 일으킨 그 원천이 되는 기록이라고 했다.(1) “어찌할꼬!” 믿음의 탄식은, 하나님의 나라가 각 개인의 심령 속에 임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율법의 형식과 외적인 종교 행위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죄에 찌든 실상을 보았을 때 터져 나온 깊은 한숨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거창한 건물이나 장소 이전에, 각 개인의 심령에 임한다. 우리의 내면에 성령께서 오셔서 거룩한 통치를 시작하신다. 성경의 모든 은혜의 비유 -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 밭에 감추인 보화, 공력의 불에 타지 않는 믿음의 집 - 가 말해주듯, 하나님의 나라는 각자의 심령에서 시작되는 실재이다. 교회의 부흥은 각자의 심령에 임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삼위 하나님 중 '성령 하나님'이 가장 간과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2)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적부흥운동(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영적 대각성 등)이 일어났을 때, 그 핵심은 '눈에 보이는 외형'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영적인 시선을 돌린 것에 있었다. 화려하고 장엄한 종교적 의식, 크고 웅장한 성전 건물과 같이 눈에 보이는 외면의 양식과 형식에 치중했던 전통에서, 보이는 않는 성도 각개인의 내면적 실상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영적대각성운동을 통해 현대에서 개신교라 하는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등 주요 교단들이 탄생하였다. 이 영적 대부흥을 주도한 조지 휫필드, 존 웨슬리 등 영적 리더들의 눈을 통해 관찰된 ‘부흥의 원동력’은 이 한 가지에 있었다. 바로 자신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향한 예민한 내적 각성이다. ‘부흥’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크고 거대한 외면의 현상을 생각한다. 술집이 교회로 변하고, 음란과 패역의 도시가 경건의 도성으로 변하는 등 외적 현상들은 부흥의 결과일 뿐, 부흥의 시발점은 한 영혼이 성령을 통해 겪는 통렬한 내면의 각성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존 웨슬리의 경우, 매 순간 순간마다 자신의 속사람, 영적 상태에 매우 민감하고 엄격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적 고백을 저널 및 일기로 기록했다.(3) 왜? 죽고 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써내려간 그의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쳐놓은 '영적 가드레일'이었다. 이 둘과 동시대에 미국의 영적 대부흥을 이끈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그는 자신이 부임했던 매사추세스의 노스햄튼 지역이 어떤 과정을 통해 부흥을 했으며, 부흥시 발생했던 수백 명의 회심한 영혼들에게 어떤 체험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내면적 분석을, ‘놀라운 부흥과 회심 이야기; 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에 기록하였다. 그는, 참된 회심에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에 대한 비범한 감각'과 '내적이고 달콤한 기쁨'이 동반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진정한 회심, 진정한 부흥이 아닌 경우에는 보이는 것, 외면의 행위, 겉으로 드러난 숫자에 관심을 둔다. 참신앙은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의 안을 보고 내면의 변화에 중점을 두는 반면, 외면적 신앙, 종교적 생활은 밖으로 드러나는 바에 신경을 쓴다. 특히 에드워즈가 ‘회심’을 묘사한 표현들을 보면, 주목할만한 것이 하나있다.
‘내적이고 달콤한 기쁨’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각’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감각, 감정, 기쁨’(4)
썩어 없어 질 것,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가 없다. 성도수, 교회 규모, 숫자에 대한 묘사가 없다. 부흥은 바로 내 심령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부흥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더욱 진전되고 확장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부흥은 우리 영혼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영적 수준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성령과 함께 새 계명으로 무장하고, 새 소망을 품고, 영혼을 향한 불타는 열정으로 주의 나라를 건설해가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면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 부흥은, 매일 매일 자신의 내면을 향한 이 질문을 더욱 더 진중하게 묻고 더욱 더 영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1] James Packer, The Glory of God and the Reviving of Religion, p 100
[2] Nigel G. Wright, God on the Inside (Oxford: The Bible Reading Fellowship, 2006), pp 6-7
[3] The Bicentennial Edition of the Works of John Wesley (34 volumes, including journals, diaries, sermons, etc.)
[4] 이진락, 『조나단 에드워드의 ‘신앙적 감정’ 연구』, pp 75-76; Jonathan Edwards, Freedom of the Will, 16:792-793
신약학자 제임스 패커는 위의 성경구절을 신약교회에 최초의 부흥을 불러 일으킨 그 원천이 되는 기록이라고 했다.(1) “어찌할꼬!” 믿음의 탄식은, 하나님의 나라가 각 개인의 심령 속에 임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율법의 형식과 외적인 종교 행위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죄에 찌든 실상을 보았을 때 터져 나온 깊은 한숨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거창한 건물이나 장소 이전에, 각 개인의 심령에 임한다. 우리의 내면에 성령께서 오셔서 거룩한 통치를 시작하신다. 성경의 모든 은혜의 비유 -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 밭에 감추인 보화, 공력의 불에 타지 않는 믿음의 집 - 가 말해주듯, 하나님의 나라는 각자의 심령에서 시작되는 실재이다. 교회의 부흥은 각자의 심령에 임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삼위 하나님 중 '성령 하나님'이 가장 간과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2)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적부흥운동(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영적 대각성 등)이 일어났을 때, 그 핵심은 '눈에 보이는 외형'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영적인 시선을 돌린 것에 있었다. 화려하고 장엄한 종교적 의식, 크고 웅장한 성전 건물과 같이 눈에 보이는 외면의 양식과 형식에 치중했던 전통에서, 보이는 않는 성도 각개인의 내면적 실상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영적대각성운동을 통해 현대에서 개신교라 하는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등 주요 교단들이 탄생하였다. 이 영적 대부흥을 주도한 조지 휫필드, 존 웨슬리 등 영적 리더들의 눈을 통해 관찰된 ‘부흥의 원동력’은 이 한 가지에 있었다. 바로 자신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향한 예민한 내적 각성이다. ‘부흥’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크고 거대한 외면의 현상을 생각한다. 술집이 교회로 변하고, 음란과 패역의 도시가 경건의 도성으로 변하는 등 외적 현상들은 부흥의 결과일 뿐, 부흥의 시발점은 한 영혼이 성령을 통해 겪는 통렬한 내면의 각성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존 웨슬리의 경우, 매 순간 순간마다 자신의 속사람, 영적 상태에 매우 민감하고 엄격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적 고백을 저널 및 일기로 기록했다.(3) 왜? 죽고 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써내려간 그의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쳐놓은 '영적 가드레일'이었다. 이 둘과 동시대에 미국의 영적 대부흥을 이끈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그는 자신이 부임했던 매사추세스의 노스햄튼 지역이 어떤 과정을 통해 부흥을 했으며, 부흥시 발생했던 수백 명의 회심한 영혼들에게 어떤 체험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내면적 분석을, ‘놀라운 부흥과 회심 이야기; 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에 기록하였다. 그는, 참된 회심에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에 대한 비범한 감각'과 '내적이고 달콤한 기쁨'이 동반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진정한 회심, 진정한 부흥이 아닌 경우에는 보이는 것, 외면의 행위, 겉으로 드러난 숫자에 관심을 둔다. 참신앙은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의 안을 보고 내면의 변화에 중점을 두는 반면, 외면적 신앙, 종교적 생활은 밖으로 드러나는 바에 신경을 쓴다. 특히 에드워즈가 ‘회심’을 묘사한 표현들을 보면, 주목할만한 것이 하나있다.
‘내적이고 달콤한 기쁨’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각’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감각, 감정, 기쁨’(4)
썩어 없어 질 것,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가 없다. 성도수, 교회 규모, 숫자에 대한 묘사가 없다. 부흥은 바로 내 심령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부흥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더욱 진전되고 확장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부흥은 우리 영혼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영적 수준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성령과 함께 새 계명으로 무장하고, 새 소망을 품고, 영혼을 향한 불타는 열정으로 주의 나라를 건설해가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면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 부흥은, 매일 매일 자신의 내면을 향한 이 질문을 더욱 더 진중하게 묻고 더욱 더 영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1] James Packer, The Glory of God and the Reviving of Religion, p 100
[2] Nigel G. Wright, God on the Inside (Oxford: The Bible Reading Fellowship, 2006), pp 6-7
[3] The Bicentennial Edition of the Works of John Wesley (34 volumes, including journals, diaries, sermons, etc.)
[4] 이진락, 『조나단 에드워드의 ‘신앙적 감정’ 연구』, pp 75-76; Jonathan Edwards, Freedom of the Will, 16:792-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