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 COLUMN
설교/컬럼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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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배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물이 배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배의 순항은 위태로와지고 결국 침몰하고 만다. 전도자가 또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거룩의 영향력을 미치려면 세상과 교류해야 한다. 세상 속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 이러한 이해를 통해 진리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센스와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물결이 전도자의 삶에 파고 든다면 그것은 아주 다른 차원이다. 그의 삶에 세상물이 들어오고 세상을 닮아 가기 시작하면, 침몰하는 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세상의 갖고 싶고, 보고 싶고, 맛보고 싶은 것 좇다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잃는다면... 예수의 성품을 닮아야 할 교회가 거룩성을 잃는다면... 이미 다 잃은 것이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팬데믹을 지나며 최근에 와서, 교회가 사회적으로 이렇게 지탄을 받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세상 사는 방식, 가치관과 대조되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다 욕 먹고 핍박 받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잘못에서 비롯된 문제라 더 뼈에 사무치게 애통하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교회를 향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기와 탐욕을 가득 실은 채 점점 가속화된 속도로 치닫는 열차에 탑승한 세상은 "과연 그 끝은 어딜까?" 하며 스스로 두려워 하고 있다. 누군가가 와서 그 미친 속도에 브레이크를 밟아주기를 원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며, 탐욕과 분쟁과 소동과 음란으로 가득한 이 곳에 빛과 소금이 되어 정상과 제 정신의 표준을 제시해주길 원한다. 교회 개척을 준비 중인 나는 지금 웹사이트를 구축 중이다. 이 쪽 분야에서는 꽤 경쟁력 있는 회사가 도와주고 있는데, 교회 개척을 위한 일임을 인지하신 대표이사로부터 견적가에서 상당히 할인된 금액을 제시받았다. 엊그제, 너무 자주 오래 입다 팔꿈치 부분이 헤어진 상의 두 벌을 교회 인근 수선집에 맡겼다. 오늘 옷을 찾으려니 너무도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을 청구하신다. 바느질 잘 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졌다. 20여년 동안 품고 살아왔던 역류성식도염이 요새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 정도가 정점에 다다랐다. 위장병을 전문으로 하는 한방병원을 다닌 지 이제 한 달이 되어 간다. 보험이 안되는 약값은, 목회 수업중인 전도사에게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오늘 약값을 지불하려니 평소보다 많이 할인된 가격을 내라고 한다. 원장님이 그러라 하셨단다. 내 행색이 그렇게 초라해보였나? 일전에 약을 택배 신청할 때 교회 주소 알려준 것 밖에 없는데... 교회를 향한 세상의 기대는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이들을 더 이상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오히려 주님께서 이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라 하시지 않았는가? 생명의 양식... (마 24:44-45)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032823 *Image from https://www.facebook.com/.../gospel.../1765197870212385/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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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둔 밤길을 지날 때‘시편 저자도 별 수 없구나.’ ‘믿음 좋다던 그도 별 수가 없네!’ 저자가 한숨을 몰아 쉬며 지었던 ‘시편 88편’은 그래서 내게 위안이 된다. 특별히 인생의 어둔 밤길을 지날 때 더욱이 위로가 된다. 믿음의 거장 그도 그랬다니…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의 기도 또한 그러한 면에서 위로가 된다(왕상 19:1-4). 그는 무기력하고 힘 없기가, 죽어서 이미 무덤에 묻힌 자와 같다고 자신을 비하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들 죽은 자들처럼 자신이 하나님의 관심과 기억에서 지워진 자처럼 느껴지는 엄연한 현실이다.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시 88:4-5) 우리 믿음의 모범이 되는 시편 기자가 썼다고 보기에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다소 실망스러운 이 시는, 힘들고 두렵기 짝이 없는 인생의 어둠 가운데 고난과 좌절의 소낙비 속에 갇혀진 자신의 속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비탄에서 시작하여 비탄으로 끝난다. 주로부터 버려진 인생이라고 자학까지 한다.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16-18절). 최소한 시의 도입부는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숨과 탄식으로 시작할 수 있겠지만, 유달리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수사가 없다.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와 같은 믿음의 결단 같은 것이 없다. 경건의 형식에 사로 잡힌 입 바른 신앙고백 같은 미사여구가 없다. 거칠지만 자신의 속 마음을 그대로 토해낸다.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와 은혜로부터 내던져진 인생임을 토로한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4절) 그러나 우리는, 그의 믿음이 예사롭지 않음을 군데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연약함을 발가벗긴 채 그대로 드러내지만, 이러한 진솔한 고백은 사람들에게 하는 뒷담화가 아니다. 다른 연약한 인생들 들으라고 하는 푸념이나 한탄이 아니다. 여과 없이 드러내는 그의 진심은 하나님께 향하는 순전한 고백이다. 그만큼 순수하기에 아름다운 치장과 수식이 필요 없다. 고난 속 고통에 따른 아픔과 실망과 낙심이 자포자기와 같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구원의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아마도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선하시고 신실하신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울부짖는 이러한 기도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신앙 고백은 바로 하나님께로 향한다. 이는 신세 한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회복하고자 부르짖는 절규이다.”(1)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13절) 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했던 첫 번째 일은 바로 기도였다. 아침은 전형적으로 회복, 건강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저자는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2) 첫째, 시편 88편은 성도의 인생이 항상 행복하기보다, 고통과 낙심이 따를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부활을 믿는 믿음이 있어도 여전히 고난이 함께 할 수 있으며, 육신의 죽음으로도 인도될 수 있다. 둘째, 참된 신자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고난 당하는 성도에게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믿는 자에게 이러한 고난은 전혀 희망이 없는 고난이 아니다.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고난의 밤을 지나면서도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것과 그들에게 그분의 신실하심을 찬양할 이유와 지속적으로 기도할 이유를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지겹도록 기나긴 고난의 시간 속에서 가능한 빨리 그 아픔의 형극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이 순간 우리는 주님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Solution provider로서 찾는다. 자신의 연약함에서 비롯되는 ‘문제 해결’에 대한 갈망이 앞선 채, 우리의 기도도 이러한 갈증이 주도하는 간구로 시작되어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르짖는 자의 절실함에서 나오는 힘이 없다. 온통 자신이 처한 문제에 집중하니, 내가 ‘이 위경의 수렁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에 골몰한다. 자신의 노력이 수반되는 여러가지 궁리 중에,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도 그들 중 하나의 장치로 마련해둘 뿐이다. 이 시편 저자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그를 의지한다. 그에게 남은 소망은 부르짖는 기도 밖에 없다(1-2절). 부르짖으니 자신이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처럼 주의 손길이 간절함을 흐느낀다(5절). 그의 부르짖음은 단순한 푸념이나 원망이 아니다. 주의 도우심에 대한 절실한 간구이다. 한탄과 푸념처럼 들리는 그의 하소연은, 그 만큼 주의 간섭하심에 대한 간절함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솔직함을 원하신다. 경건의 형식에 맞추어진 정돈되고 정제된 언어보다도, 거르지 않고 거칠지만 진솔하고 투명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아울러 문제 해결을 바라는 성급한 기도보다, 그 문제를 그냥 방치하지 않으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확신을 듣기 원하신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고난의 터널 속이라도 항상 함께 하시고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의 재확신을 원하신다. ‘문제 해결’은 그 다음에 따라 올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따라서 고난의 밤을 지날 때, ‘문제 해결’이 아니라 ‘믿음의 확신’에 마음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 끈질긴 기도는 오랜 기간 지속되는 고난을 이기는 유일한 힘이다.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며, 끝까지 견디면서 기도하는 자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8:7) 시편 저자의 믿음이 귀감이 되는 이유는, 그가 강하고 센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고 처리해야 될 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050423 ------------------- (1) Tremper Longman III, Psalm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Westmont, Il.: InterVarsity Press, 2014), p 300 (2) Allen P. Ross, A Commentary on the Psalms (Grand Rapids: Kregel, 2011); 예배와 영성: 시편 강해를 위한 주석, 김수영 옮김 (서울: 디모데, 2018), p 872-8732023-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