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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크리스천은 위에 있는 모든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가?
작성자
sosalty
작성일
2024-12-13 01:56
조회
312
답변완료
이번 윤석열대통령 탄핵건과 관련하여, 제 개인적으로 그 분과 그의 배우자가 잘못을 많이 한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제 생각을 표현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으므로,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 말씀으로 인하여 제 안의 생각을 표출하기에는 매우 위축됩니다. 이번 사태로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고픈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제게 오히려 정죄감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믿는 신자로서 이번 일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요? 자신의 생각을 ‘정치적’이라 폄하하며 침묵하는 태도가 나을까요?
전체 1

  • 2024-12-13 01:57

    일전 박근혜대통령 탄핵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윤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기독교계에서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아래 성경구절을 둘러싸고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1) 로마서 13장의 현대적 적용

    하지만 본문은, 백성들에게 국가권력에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내용이 절대 아닙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3, 4절에서 이들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오히려 권력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백성들에게 선을 베푸는 데 사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3-4)

    그러므로 각 사람이 권세에 복종해야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백성들에게 선을 베푸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을 근심케하는 권세자마저에게도 해당되는 복종이 아닙니다. 더구나 헌법을 통해 대한민국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국가권세는 삼권으로 엄연히 분립되어 있습니다. 국회도 행정수장인 대통령에 준하는 권세이므로 상대권력을 견제하며 국민에게 선정(善政)을 베풀도록 하시는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헬라어 원문과 당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해당 구절을 좀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롬 13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

    롬 13:1-2절을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하면, 국왕의 권력은 신(神)에게서 받았다며 왕권의 절대성을 주장한 절대주의(絶對主義)시대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Divine Right of Kings)과 다름없는 풀이가 됩니다. 제가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성경의 원문이 쓰여졌던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사상/정치/문화/경제적 맥락(contextual understanding)을 도외시하고 문자해석(textual understanding)에만 치중하면 왜곡된 이해가 나올 개연성이 있습니다.

    바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세윤교수는 이 구절을 당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2009년 5월 <복음과상황>紙를 통하여, "이 구절은 AD 56~57년의 로마 교회의 현실, 즉 로마정권을 향한 유대 반란이 일어나려고 하는 정황 속에서 읽어야 한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반란에 합류하지 말라며 이 말을 한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세상 종말이 임박했음을 믿었던 바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뜨거웠으며, 복음전파에 있어서 로마제국의 정치/군사적 안정과 비교적 공정한 사법/행정 체계가 선교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은, 다음 3, 4절에서 이들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에서는 1, 2절과 3, 4절의 문맥 관계가 나타나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3절과 4절은 각각 ‘γὰρ(왜냐하면)’라는 접속사로1, 2절의 주장과 아래와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3절) οἱ γὰρ ἄρχοντες… (왜냐하면 권세자들은…)
    (4절) θεοῦ γὰρ διάκονός ἐστιν…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바울은 각 사람들이 권세에 복종해야되는 근거로 3, 4절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다스리는 권세’는 선한 이를 괴롭히는 자가 아니며, 악한 일을 하는 자를 응징합니다(3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백성에게 선을 베푸는 자입니다(4).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국가와 세상 정부에게 권세를 주어 악을 처단하고 제재하는 일을 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선을 베풀게 합니다. 나라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쓰임받은 권력이므로 그 권력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이는 구약의 가르침과 정확하게 일치하지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시 72:4)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잠 16:12)

    (3) 맹목적 복종의 역사적 폐해

    로마 콘스탄틴황제는 음지에서 핍박받던 기독교를 양지의 종교로 성장케한 인물로 유명하지요. 313년 밀란칙령(the Edict of Milan)을 통하여, 박해박던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이후로, 그는 기독교를 옹호하고 강화시켜왔습니다. 로마 정치세력의 뿌리깊은 다신사상에 대항하여, 비잔티움에 동로마, 즉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새로운 신권도시를 건설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독교 장려책은 순수한 믿음에서라기보다 다분히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화평과 평화의 복음은 적대와 전쟁의 종교로, 겸손과 희생의 십자가는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해방과 자유의 복음은 정치적 압제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던 것이지요. 본인 스스로를 ‘하나님이 임명한 주교(bishop)’로 자칭했던 그에게 교회와 국가는 동전의 양면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많은 신학자들은 그가 주창한 로마카톨릭을 ‘국가교회(State Church)’라고 부릅니다. 기독교는 광대한 로마제국의 통합과 안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권력의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극성이었던 이단적 사상에 대해, 모든 주교위에 군림했던 주교로서 그가 내린 판결도 ‘제국의 통합, 교회의 일치’라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정해진 것이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 삼위일체설을 부인했던 이단사상 아리우스주의(예수의 신성 부인, Arianism)에 대해서도, 그는 ‘하나되는 교회(Unity of the Church)’라는 관점에서 애매한 판결(Creed of Nicaea)을 내렸지요.

    이렇듯 기독교주의가 정치세력화되면, 기독교는 제도적, 명목적, 강압적으로 변질됩니다. 마틴 루터로 비롯된 종교개혁은 바로 국가권력이 쥔 ‘교회권력(Sacred Power)’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입니다. 예식도, 헌물도, 면죄부도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Sola Fide)’가 그의 첫째 개혁 정신이었습니다. 그가 만일 주안에서 건강한 사유없이, “위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을 맹목적으로 수용했다면 이러한 개혁 정신이 싹텼을까요? 생각없는 영적 각성은 없었으며, 깨달음없는 영적 부흥은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 학살의 대표적 인물 중에 아이히만(Adolf Eichma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수용소로 수송하는 일을 충직하게 수행하였으며, 기차에 가스실을 설치하여 많은 수의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학살하는데 공헌하였습니다. 나중 재판정에 선 그는, 국가의 명령에 순종했을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였지요. 이에대하여 유대인 철학자, 아렌트(Hannah Arendt)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흉악한 범죄를 잉태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1)고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힘은 그리스도인이 끊임없이 성찰하며 자신의 삶속에서 말씀을 실천할 때 드러납니다. 자기생각과 자기대답과 자기묵상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현대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순종적인 사람은 착한 사람같지만, 나쁜 명령에도 잘 순종하는 약점을 가집니다.

    건강한 성경해석과 사유하는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생각이 마비된 순종은 교회를 아프게 합니다. 위태롭게까지 만듭니다.

    (1) Hannah Arendt, The Life of the Mind, Vol. One: Thinking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8), p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