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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작성자
sosalty
작성일
2025-03-10 16:25
조회
207
답변완료
신앙생활한지 10년이 넘어가는 중년입니다. 기도가 필요하고 좋은 것은 잘 알고 있는데,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좋은 기도는 어떤 것인가요?
전체 1

  • 2025-03-10 16:32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잘 하려면 먼저 좋은 대화자의 기본조건에 대해 생각해보시기를 조언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대화를 잘 하는 자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분량이 길어지는 이유로, 이하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1) To Whom:
    일단 대화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해야 한다. 글로벌 명문대출신 박사에다 인생 산전수전 다 겪어본 50대 중년에게 마치 사회생활 갓 시작한 젊은이 대하듯이 대화할 순 없지 않은가? 이 고난 저 환란으로 심히 상처받은 이에게, 위트와 농담을 지나치게 섞어가면서 얘기하면 결례가 아닌가?
    그리고 상대방의 말표현뿐만아니라 표정과 몸의 움직임등 그에게 온 집중해야 한다.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데, 다른 곳을 응시하거나, 다른 일(신문읽기, 스마트폰 보기 등)에 열중하면서 듣고 있다며 듣는 태도는 상대방을 경홀히 대하는 태도이다. 상대의 존재감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이다.

    2) What: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여 조리있게 상대방의 감정과 반응을 살피며 자신의 입장/주장이나 전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는 것은 커뮤니케이터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말만 잘해서는 안된다. 아는 지식이 많다고, 할 말이 산더미처럼 있다고, 억울하고 답답한 사연이 자신에게만 있다는 듯이 대화의 시간을 독점하며 – 아무리 재미있게, 조리있게, 말 잘하더라도 – 자기말만 하는 자는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다.

    3) Listen:
    대화의 분량도 적절하게 상대방에 양보하며, 중간중간 상대방이 반응할 시간도 내어주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그가 표현하지 않았더라도 행간을 통해 그의 진심, 원하는 바, 미처 말하지 못하는 포인트를 읽어내는 Power Listening 필요하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는데 불쑥 끼어들거나, 논지를 흐리는 주제를 갑자기 꺼내는 것은 볼썽 사납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대꾸할 내용에 너무 몰입하거나 다른 생각, 딴청을 피우는 것도 결례이다.

    4) Response: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과 진심을 불편함없이 편하게 토로할수 있게 하려면 잘 반응해야 한다. 적절한 반응은 대화의 윤활유이다. “맞아. 그러겠구나!” “저런… 마음이 아팠겠네.” “힘드셨겠다.” ‘헐..”
    좋은 반응 중에 하나는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왜 그랬데요?” “그때 힘들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즉 그와 대화할 수 있는 통로이다. 만왕의 왕,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우리와 언제든지 대화하실 언로를 열어놓으시고, 들으실 준비를 항상 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이고 영광인가?

    하나님과 대화를 잘 하는 자, 하나님께서 즐겨 들으시는 기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1) To Whom:
    자신이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신지 아는 자이다. 그는 자신이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보다 더 나의 행복을 바라시는 분이시며,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내가 원하는 때보다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시며, 거룩하시며 거짓과 악을 미워하시며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며 선을 베푸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속성을 가지신 분께서 그의 성품과 다른 이기와 욕심과 정욕에서 나온 기도를 들으시면 얼마나 불편하시겠는가?
    특히 죄를 미워하시고 죄와 공존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에, 거리끼는 죄가 있다면 반드시 회개로써 용서함을 통해 깨끗함을 받고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야 그와 대면할 수 있다.

    2) What:
    기도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기도자에게 묻는 질문이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이 성경구절에서 ‘중언부언’의 헬라어 원어 표현은 βαττολογέω(밧톨로게오), 말더듬이(stammerer)에서 유래된 단어로 “말을 더듬다”, “쓸데 없는 말을 반복하다”의 뜻을 의미한다. 경건의 형식만을 갖춘 채 기도 상용구를 반복에 반복 거듭하는 것보다, 불의한 재판관을 귀찮게 할 정도로 탄원한 여인처럼 자신의 간곡한 사연과 진심이 실린 기도를 들으신다는 말씀이다. 기도의 자리에는 앉았는데, 묻고 구해야 할 자신과 주변의 문제와 영적 물음이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면 먼저 자신안에서 이것들이 정리되어야 한다. 자신이 구할 바를 자신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주시겠지 하며 이것마저도 하나님께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안이한 기도자의 자세이다. 주님앞에 좋은 커뮤니케이터는 아니다.

    3) Listen:
    기도의 자리에 앉은 우리가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는, 내가 speaker가 되어야 한다는 착각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좋은 대화자는 자기가 말을 했으면 상대방에게도 자신이 사용한 시간에 상응하는 시간을 내어주고 그의 응답을 듣는 자이다. 기도는 일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청구하는 시간이 아니다. 대화의 시간이다. 잘 듣지 못하면 엉뚱한 것 구할 수 있다. 주님의 뜻과 상관없는,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될 수 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주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이다. 주님께서 흠향하시는 기도의 향은, 주님의 성품과 그분의 뜻에 일치하는 기도이다.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출 30:37-3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뜻을 이루신다. 기도자는 하나님과 기도의 동역자로서, 그가 의도하신 일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한다. 따라서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기위해 기도의 동역자로 나를 부르신 영광스런 자리이다.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6-37)

    예수님도 아버지 뜻의 성취를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제자들도 동역자로서 이 기도에 참여하기를 원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39-40)

    따라서 기도자는 거두절미하고 제일 먼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알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의 의도, 플랜이 무엇인지 알아야 자신의 간구를 이에 맞출 수 있다.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다른 기발한 방법은 없다.

    “하나님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언어로 내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로 내 귀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1) 그런데 내 눈앞의 현실에서 벌어진 지금 이 상황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 있을진대, 어찌 그분의 뜻을 알지못하고 구하는 기도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이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싫든 좋든 눈앞에 펼쳐진 정황이 내게 영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묻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 알려달라고 간청하는 자는 그분께서 절대 외면할 수가 없다. 반드시 응답하신다.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 주시는 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낯설기 그지없는 이방 창원땅에 처음 와서 교회개척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도 모른 채, 자신의 무력함을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연약함에 고개만 푹 숙이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날… 이 찬송만 하루에 수십번 부르게 하시며 그의 얼굴을 구하고 찾게 하셨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그러던 어느날… 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한밤 중,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무슨 말이 들리는데, ‘꿈이겠지’하며 곤한 육신, 계속 잠자기를 고집하며 비몽사몽 중에 버티면서도 들리는 말씀은 너무 또렷하다. “받아 적으라!”

    “내가, 네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도 다 주지는 않는다.”
    “평생 공급이 끊이지 않고 필요가 충족된 상태에는 갈급함이 없다.”
    “내가 인색해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네가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4) Response:
    가장 전형적인 반응은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의외로 내가 구하던 것과 다른 바를 깨닫게 하셨으면, 묵은 기도는 당장 내려놓아야 한다. 갈 바를 보여주셨으면, 그 뜻을 대적하려는 자신의 상식/이성/지혜/계획을 포기하고 복종의 행함이 따라야 한다. 이러한 순종의 반응을 보인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알려주시고 더 보여주신다. 그리함으로써, 그의 기도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며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튼실해진다.
    나의 기도에 주시는 응답은 내게 분명치 않거나 명확치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인지 나의 뜻인지 불확실 할 때가 있다. 그때는 power listening 해야한다. 질문을 해야한다. 묻기를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한편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감사와 찬송으로 표현된다. 감사와 찬양은 성도의 본분이다.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해 성도들의 합당한 반응을 하나님께서 듣기원하신다.

    합리적인 세상의 일처리 방식이 교회에도 물밀듯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공정해보이는 투표나 다수결같은 민주적 방식 또한 교회에서 의사를 결정하는데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좀더 영적으로 깨어있어 주님께 묻고 일의 방향과 방법을 분별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기도하지 않는 100명이 찬성한 의견보다도 기도하는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는 교회 -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여 주님의 기뻐하시는 길을 좇는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참고 (1) “God speaks in the language you know best - not through your ears, but through your circumstances.”
    - Oswald Chambers, My Utmost for His Highest (Grand Rapids: Discovery House Publishers, 1992), Jan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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