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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Large size를 좇는 부흥
등록일
2025-07-19 10:22
조회수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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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배 때마다, 기도모임마다, 부흥, 부흥, 부흥을 외치고 간구한다.
말이 부흥이지, 실제로 구하는 바는 ‘양적 성장’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부흥’과는 전혀 상관없는 바를 구하고 있다.
성경에서 ‘부흥’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은 하박국서가 유일하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3:2)
여기서 ‘부흥’의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 단어는 חַיֵּ֔יהוּ (하이예후)이다. “죽었던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다”란 의미이다. 바벨론으로부터 패망당하기 직전 남유다 말기에 활동했던 선지자 하박국은, 죄악과 불의와 패역이 만연한 조국의 현실을 보고 애통해한다. 사회는 부패하고 영적으로 타락한 유다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부흥’케 해달라고 읍소를 한다.
시체처럼 죽어가는 조국을
살리소서!
되살리소서!
다시 일으키소서!
חַיֵּ֔יהוּ(하이예후; revive; 復興; 부흥)가 일어나기 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전의 상태는 가망이 없고, 싹수가 노란,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상태이다. ‘부흥’을 울부짖어야 하는 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구원의 손길이 절실한 상태에 있다.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애끊는 애통함으로 회개해야 할 정황이다. 물에 빠진 자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절실하게 간곡하게 주의 도우심을 부르짖어야 할 때이다. 자신이, 자기 교회가 죽어가는 상태, 그 안의 참혹한 죄악과 불순종, 패역을 보고 영적 구역질를 토로할 때이다.
말세의 고통하는 때의 징후가 완연한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참’ 부흥을 간구해야 할 때이다. 가치관의 혼란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져서, 저마다 자기소견대로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짓고 심고 거두고 하면서… 숨쉴 새없이 ‘분주’한 삶 속에서, 옮고 그름에 대한 생각 없이, 선과 악에 대한 분별없이, 각기 자기 주장대로 살고 있다. 왜 로마의 부유한 귀족, 당대의 최고 엘리트들이 허기지고, 고독한 아프리카 사막으로 들어갔는가? 하나님과 거룩한 대면의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 집중의 시간이 우리 인류에게 준 유산이 실로 엄청나다. 수많은 궤변과 이단적 사상을 정리하고 건강한 기독교 신학이 이 시간, 이들 사막의 교부들(Church Fathers)을 통해 정리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오늘날. 분별의 ‘집중’으로부터 흩뜨려진 극심한 ‘산만’ 가운데 살고 있다. 이러한 어수선 소란 속에서 거짓이 진실을 능멸하고, 악한 자가 선한 자를 짓밟으며, 공정과 정의를 외면하며 사는 자가 오히려 사람 눈 보기에 행복하고 윤택하게 사는 것을 두 눈 똑똑히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선과 악, 거짓과 진실, 부정와 정의는 신자(信者)에게만 해당하는 가치가 아니다. 양심있는 인간이면 분별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가 멸시되고 냅다 내팽개쳐진 사이에 우리 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 윤리도 도덕도 양심도 없는 – 정글처럼 전락해버렸다.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악은 제재되어야 하고, 선은 권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의의 기본적 개념이다. 선을 베푸시고 악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정의가 우습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 시대처럼 하나님 진리의 말씀이 업신여김을 받은 때는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애통한 것은, 이토록 진리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정의가 짓밟힌 혼돈의 사회에서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바른 길의 본이 되고, 옳은 길의 표준을 제시하는 어른이 – 그가 신자이던 불신자이던 - 이 사회에 없다. ‘꼰대’라고 비난당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교인들은 ‘거룩’의 집중으로부터 산만케하는 요소가 다분히 많은 대형교회를 선호하고 흠모한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집중보다, 시스템, 프로그램, 거대 체제를 움직이기 위한 운영, 관리, 직분/서열/위계, 조직, 인사, 예산, 비용, 손익, 보고서… 어느덧 세상 영리기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교회의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영성의 깊이보다, 큰 조직을 이끌고 많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CEO같은 리더쉽을 원한다. 교회 지도자의 자질로 리더쉽 스킬, 실력, 학력이 요구되고 있다. 하나님과 관계의 깊이에서 나오는 설교보다 설교능력이 중시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마 10:27)
하박국, 엘리야, 예레미야 같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받은 말씀을 전달하는 영성보다 스킬, 프리젠테이션 실력, 해박한 지식, 유모어와 재치를 반겨한다.
살리소서!
되살리소서!
다시 일으키소서!
‘부흥’케 하소서!
한국 사회를…
한국 교회를…
비본질을 좇는 산만에서
분별의 집중,
거룩의 몰입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071925
*사진설명: 구글에서 ‘Church Revival’에 대한 검색 결과. “Revival”을 외치는 자의 정황은 이렇게 웃고 떠들썩할 때가 아니다.
**(PS) 혹 대전에 신앙상담이나 양육이 필요하신 지인분이 계시면 연락주세요. 지체없이 달려가서 뵙겠습니다.
- 연락처: hunlee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