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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기도는 관계이다
등록일
2025-08-08 11:17
조회수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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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달라고 보채고 저것 해결해달라고 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주님과 함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 앞에 무릎 꿇은 적이 얼마나 되던가?
그가 주신 평안 속에서, 길을 걸으며, 버스를 타며, 산책을 하면서 말이다.
내쪽에서 뭘 좀 하면 그 다음 저쪽으로부터 돌아올 대가를 기대하는 식의 기도는 일종의 거래다.
‘관계’로써의 기도가 아니라 ‘거래’로써의 기복으로 변질된 것이다.
“기도란 하나님을 가까이 불러오는 도구가 아니라 거룩한 임재에 반응하는 방식을 가리킨다.”(1)
하나님의 임재는 그분이 내 안에 계시는가 또는 부재하시는가의 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 다만 내가 인식하지 못해서 부재 중으로 느낄 뿐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나를 주어로 치환해서 문구를 바꾼다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몰입’이다.
시끄럽고 번잡한 맥도날드매장에서 종달새처럼 친구들과 웃음꽃 함박, 깔깔 호호 떠드는 여중생들을 보라.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친구와의 대화, 몸짓, 표정에 즐겁게 열중한다.
그들의 서로에대한 몰입력은 경이롭다.
주님과 대화하면서…
옆사람 통성기도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든지,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표현상의 문제에 지나친 신경을 쓴다든지,
오랜 시간 응답이 없어 낙망하여 돌아서려 할 때마다…
특별히 이 부분, 즉 친한 벗을 향한 ‘몰입’에 문제가 없는지 살핀다.
그리고 대부분이 여기에서 비롯됐음을 깨닫는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 33:11)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항상 살피시고(시 33:18)
우리에게 온통 관심을 쏟고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에,
수양의 기름이 필요없다.
대가를 바라고 드리는 기복적 의식, 종교적 군더더기가 필요없다.
친구처럼 친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1) 필립 얀시, 기도 (서울: 청림출판, 2007), 86; Philip D. Yancey, Prayers: Does It Make Any Difference? (Grand Rapids, Zondervan, 2006)
*사진: 지난 3월 창원대 산책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