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 COLUMN
설교/컬럼
목사 칼럼
[영적 쇠퇴는 기도의 쇠퇴에서부터 온다]
등록일
2026-08-29 23:00
조회수
189
![]()
기도가 교회 영적 동력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개인 신앙생활의 한 부분으로 주변화되는 현상이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것 같다. 기도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어느덧 프로그램, 캠페인, 이벤트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반면에 오늘날 성도들에게 말씀을 접할 기회 자체는 사상 유례없이 많아졌다. ‘말씀의 기근’보다 ‘말씀의 과잉’에 가깝다. 주일설교, 수요·금요예배, 성경공부, 큐티, 신앙서적, 유튜브 설교, 온라인 성경강해, 유명 목회자 강의, 각종 기독교 콘텐츠…
영적 쇠퇴는 말씀의 쇠퇴보다 기도의 쇠퇴로부터 온다. 말씀의 풍성함이 영적 풍성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많이 듣는 것과 말씀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좋은 설교를 찾아 듣고, 유명 목회자의 설교로 은혜 받고, 신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자족하여 그친다면 ‘영적성숙’과는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있다. 정작 그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반응이 있어야 한다. “주님, 그래서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경건의 습관으로 성경책은 읽었지만, 말씀을 듣고, 은혜의 감동까지 받았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은 없다면, 기도라 불리우는 이 시간이 없다면, 영적 진보는 커녕 영적 퇴보의 내리막길을 경계해야 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성경지식은 많아지는데 순종은 약해지고,
설교는 차고 넘치는데 회개는 부족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말씀 앞에 우는 사람은 적어지는…
이 기막힌 상황은 많은 부분 기도의 쇠퇴에서 비롯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말씀은 많이 들어서 머리는 채워졌지만 주님 앞에 무릎은 꿇지 않는다. 아는 성경지식은 바다처럼 깊어졌지만 정작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접시물처럼 얕다. 들은 설교는 쉽게 평가하지만 자신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지 않는다.
교회마다 젊은 세대의 참여율이 적다고 한숨이다. 엄마손, 아빠손 잡고 나오는 어린 영혼의 수가 급감하고 있는 현실은 더 심각하다. 그래서 “다음 세대! 다음 세대!”를 외치면서 건강한 신앙 유산을 물려주려고 힘쓰고 있지 않은가? 다음 세대가 살려면 무엇보다도 기도부터 살아야 한다. 없고 굶주리고 아프고 고칠 의술은 없고 수술받을 경제력도 안되고 모든 것이 빈약하고 가난하고 허기졌던 시절, 갈급함이 있었다. 주님께 나아가 엎드리고 부르짖고 탄원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약하고 다치고 상한 심령이 “주님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부르짖었던 기도의 영성과 영적 유산이 한국교회를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게 했다. 부흥의 원동력은 바로 기도의 회복에 있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초대교회의 영적 불을 지핀 열두 사도들 스스로가 규정한 사역목록 제1호도 바로 ‘기도’였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4)
기도는, 보고 읽고 들은 말씀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관계적 통로이다. 말씀을 읽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보다 “이 본문이 무슨 뜻인가?”에 머물기 십상이다. 기도가 약해지면 말씀은 신앙적 지식, 또는 정보적 콘텐츠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고도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기도를 통한 말씀의 내재화 과정(말씀 → 기도 → 회개 → 순종 → 삶의 변화)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낸다. 동료와 친구와 함께 하여도, 일을 하고 공부를 해도, 내 안의 내 자신과 씨름하며, 생각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이 시간 주님과 얼마나 대면하는가? 이 시간 주님과 얼마나 대화를 나누는가? 얼마나 여쭙고 인도받고자 하는가?
17세기 프랑스의 수도사 로렌스가 남긴 ‘하나님의 임재 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기를 훈련하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영적 생활에서 가장 거룩하고 필요한 훈련은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것이다.”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란 “그분이 언제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순간순간 어떤 식으로든 그분과 막힘이 없이, 그리고 겸손하면서도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뜻한다.”(1).
꼭 교회나 기도실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모든 장소에서, 어느 순간에도 우리 마음을 예배 처소로 만들어 하나님과 대화하는 훈련을 해나갈 수 있다.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하나님을 자주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거룩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 처음에는 지속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연습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순전하고 사랑에 찬 시선으로 주님의 임재를 바라볼 수 있게"(2) 될 것이다.
일상의 모든 장소가 모든 순간이 기도의 골방이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되면 교회의 공적 기도시간이 사모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영적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자신의 영적 단련을 위해서라도 공적 기도시간, 새벽기도시간에 나와야 된다. 기도 않하는 영혼, 기도를 방치하는 영혼은 - 호흡기 질환으로 숨쉬기가 원활하지 못한 환자처럼 - 파리해진다.
082926
(1) Brother Lawrence,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의 임재 연습, 윤종석 옮김(서울: 두란노서원, 2018), 110-126
(2) Brother Lawrence, 130
*image from https://christiandiscipleshiplibra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