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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주셔도 다 주시지 않는다
등록일
2024-01-24 08:05
조회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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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도 다 주지는 않는다.”
“평생 공급이 끊이지 않고 필요가 충족된 상태에는 갈급함이 없다.”
“내가 인색해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네가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한국에 사역하러 나온 지 훌쩍 4년이 가까와온다. 평생 동안 겪어본 것보다 더 크고 깊은 갈급과 결핍을 겪는 나에 “들으라!” 하신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필요의 여백이 나를 살린다. 의지하게 한다. 두드리게 한다. 부르짖고 구하게 한다. 오뉴월의 가뭄 끝에 악착같이 살아내려는 마른 뿌리의 간절한 생명력에, 한여름 장대비에 대한 소망으로 꽉 차오른다. 단단한 콘크리트 아스팔트 바닥에 숨이 막힌 채, 생명의 빛 줄기를 향한 여린 싹의 애타는 몸부림은 아스팔트의 초극세 빈틈을 찾아내게 만든다. 결국 그 빈틈을 뚫고 빛을 만나고 만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윗 구절에서 시냇가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פֶּלֶג(펠레그). 자연의 상태에 있는 시내가 아니다.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농부가 인공적으로 물을 댄 수로(channel)이다. 마치 농부가 정성 들여 돌보는 과실수처럼, 자연 상태에 있는 나무들도 하나님께서 세심히 돌보심으로 철을 따라 과실을 맺는 형통한 나무가 된다는 말씀이다. 습기 하나 없이 메마른 지 꽤 오래된 땅에 서있는 나무도 때가 되면 푸른 잎사귀 내고, 과실을 맺도록 돌보신다는 것이다.
오랜 춘궁기에 시달린 깡마른 표범에게는 결핍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아우라가 있다. 날렵함이 있다. 살기 위해 잡아 먹어야 하는 간절함이 있다. 일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그는 말랐지만 민첩하고 사납고 강인하다. 때가 되면 사육사가 던져주는 고기 먹으며 일상을 보내는 동물원 사자는 무기력하다. 매일을 쿨쿨 잠 자는 것으로 꽉 채운다. 그의 졸리운 눈은 2/3 가량 감기운 채, 낙도 희망도 생명력도 없어 보인다. 그를 바라보는 창살 밖 관람객도 축 처진다.
필요할 때 언제나 자기 보다 작고 약한 동물을 잡아 먹고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힘세고 용맹스럽던 동물들은 쉬이 멸종됐다. 지금도 멸종 위기에 있다. 맘모스, 티라노사우르스, 벵갈 호랑이, 골리앗 개구리, 아프리카들개 리카온… 반면에, 작고 미약해서 남에게 쉽게 먹잇감이 되던 동물들은 오랜 시대를 거쳐 종을 이어가고 있다. 사슴, 영양, 새, 벌레들… 덩치 크고, 날렵하고, 사납고, 힘센 자는 빨리 멸하고, 작고, 가녀리고, 약해서, 남에게 쉽게 당하는 자는 오래 간다는 패러독스가 지구 생성 이후 역사를 통해 증명된 진리이다. 가장 오래 사는 종은 가장 약한 것. 살기 위해 항상 깨어있고, 자기 생명을 지키려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가녀린 종들이다. “Winner lives short, loser survives long.”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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