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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변명이 일을 그르친다
등록일
2025-01-14 17:26
조회수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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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3년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귀한 배움이다. 기대치 않은 성과가 나왔을 때, 어찌 그것이 전적으로 내탓이었겠는가? 누군가 다른이가 결정적으로 일을 태만히 했거나, 지원이 절실했던 옆부서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던가,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인데, 나 혼자 비난의 덤터기를 뒤집어 쓰는 것이 못내 억울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이런 자리에서 입바른 변명을 한다. 그리고 열이면 열, 이러한 변명은 자신을 향한 비난의 독소를 더욱 자극한다.
“모두 저의 불찰에서 비롯됐습니다.”
“송구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보다 십수년 산전수전 다 겪어본 상사가 왜 정황을 모르겠는가? 변명 안해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번 일을 통해, 부하직원이 더 클 재목인줄을 보고 싶어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호랑이 상사의 포효하는 분노의 예봉은 무디어지고 부드러워진다. 불신의 눈초리가 신뢰의 시선으로 바뀐다.
자신을 치러 코앞에까지 쳐들어온 블레셋 군사들 앞에서, 제사를 드리기위해 장장 7일을 눈빠지게 기다렸던 사무엘제사장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급한 마음에 사울 자신이 번제를 드리고 만다(삼상 13:5-15). 이윽고 도착한 사무엘에게 구차한 변명을 하며, 세 부류에게 탓을 돌린다.
1)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2) 사무엘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3)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삼상 13:11)
“그래서 이렇게 당신 대신 번제를 올린 것입니다.”
그가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마음에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했더라면…
그의 왕위는 온전했을런지 모른다.
섣부른 변명이 더 큰 매를 부른 것이다.
신약에서도 섣부른 변명으로 신세 망친 대표적인 경우가 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 25:24-25)
그는 주인을 심하게 오해했다. 심지도 안고 씨뿌리지도 않았는데도 거기서 수확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이 굳은(σκληρός; 스클레로스; 기대수준이 높은, 비위 맞추기가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주인이 실제로 그러하더라도, 하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아주 기분 상할 표현이다. 하지만 그 이전 다섯, 두 달란트 받았던 자들에게 취했던 주인의 행동을 살펴보면, 이 자가 말한 “굳은 사람”표현은 매우 왜곡/과장 되었다.
게다가 그가 한 변명은 앞뒤 두서가 전혀 맞지 않는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기를 바랄 정도로 기대 수준이 터무니 없이 높은 주인이라면, 주인에게 혼나지 않기위해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이든지를 해서 그 돈을 불리는 것이 경우가 맞지 않는가? 그런데 그는 그것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변명하는 자의 전형적인 증후이다.
앞뒤 논리가 맞지 않아도…
섣부른 변명이라도 해서…
자신을 변호하고 지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상대방의 입장, 동료들이 하는 상식적인 태도…
이런 것들엔 아랑곳 하지도 않는다.
성경 본문은 외형적으로, 받은 한 달란트 가지고 아무 것도 하지않은 하인의 행동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게한 결정적인 이유는, 주인을 주인 앞에서 “굳은 사람’이라고 폄하했던 표현과, 그를 노력하지도 않고 이익 얻기를 바라는 하등한 인간 취급을 한 하인의 방정맞은 “변명”에 기인했음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뿐 아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마 25:25).”
이미 진노한 주인의 약을 바싹 올린다. 여기 당신이 준 한 달란트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제가 받은 한 달란트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여 당신에게 도로 돌려드렸는데, 왜 화를 내십니까?
이 하인은 여태까지 주인과 나눈 대화에서 느낀 바도 깨달은 바도 없다. 듣지를 않는다. 목이 곧은 자이다. 자신의 고집대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염소이다.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 보신(保身)만 챙기는 마음밭이 단단한 자이다.
내 아들이…
내 아들 또래가 사회 중추가 될 가까운 미래엔…
자신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는
상대방과 이웃을 배려하는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훈훈한 사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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