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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지 않아서
등록일
2023-08-22 15:53
조회수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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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지 않아서]
우리는 부부, 자녀들과 가족 간, 친구, 이웃 간에 관계를 맺어 가면서 서로 조언도 구하고, 위로도 받고, 외로움도 이기며,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만약 이러한 관계에 금이 가거나 문제가 생기면, 이내 마음에 상처를 입고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일상의 리듬이 깨지기도 한다. 큰 조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지켜나가는 데에 유난히 뛰어나다. 우리는 이렇게 남들과 관계를 잘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우리들 각자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그가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그분과 나 자신과의 관계에 있다. 지금 현재 그가 내게 주신, 내 마음에 걸리는,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말씀 한 톨도 생각나는 게 없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하시면서 늘 언약을 주시고 그들과 언약의 관계를 맺어가셨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아예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 자신도 그 안에 거하게 하신다. 우리가 예수 안에, 우리 안에 예수께서 계신 것을 우리 스스로가 안다고 하셨다(요 14:20).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 말씀이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면 그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의 아들, 딸들은 영적인 말씀을 통해 그를 만나고 교감하고 관계를 맺어간다. 말씀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육신에 있는 자들은 전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8:8).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요 1:14)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말씀의 떡, 생명의 떡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육신을 생각해보라. 육체가 건강 하려면 무엇보다도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으려면 음식을 먹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즉 식욕이 있어야 한다. 입맛이 돌아야 한다.
‘입맛이 돈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 아닌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식욕은 건강과 직결되며, 식욕부진은 건강 내리막의 전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화가 진행될수록, 신체 활동량의 저하, 대사량의 감소,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의 변화, 식도락(食道樂)을 통한 쾌감지수 하락 등으로 인해 식욕을 잃게 된다. 여기에 평소 먹어야 할 약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노년 우울증, 고독감 등이 밀려오면, 식욕부진이 더욱 가속화된다고 전문의들은 강조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영을 통하여 들어오신다. 영이 없는 육신은 생명 없는 몸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본질이 바로 영이다. 영이 바로 내 자신이다. 육은 잠시 동안, 나의 본질인 영을 감싸고 있다가, 때가 되면 수명이 다하고 떠나고 만다. 하지만 영은 영원히 영원히 남는다. 육신이 하고픈 것 다하고 달콤한 죄의 낙을 즐길 것 다 즐기고 육은 떠나면 그만 이지만, 그 죄의 대가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영이 온통 다 뒤집어 쓴다. 나는 과연 이 고귀하고 소중한 영원한 생명인 영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육신의 기회 - 이제 10년 남았는지, 30년 남았는지 모를 –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다시는 오지 않을 육신이 호흡하고 있는 이 땅에서의 시간을, 나의 영원한 미래를 위하여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이 소중한 영을 위하여 매끼니 거르지 않고 생명을 떡을 잘 먹고 있는가? 생명의 양식이 맛깔나는가? 말씀의 밥만 생각하면 영혼의 입에서 군침이 도는가? 영혼의 떡 소리만 들으면 배가 꼬르륵 꼬르륵 아우성 치는가? 한 사발 가득 채워 먹고도, ‘한 그릇 더!’ 하며 왕성한 식욕이 솟구치는가? 식욕은 과연 있는가? 입맛은 과연 당기는가? 입맛 잃은 병약자처럼 먹기는 싫지만 살기는 해야길래, 누가 떠먹여주면 겨우 먹는 연명 수준인가?
좋은 지 알아도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만큼 간절함이 없어서이다.
쵸콜렛, 도너츠, 콜라, 온갖 설탕 덩어리들이 나쁜 지 알아도 끊지 못하는 이유는 간절함이 없어서이다. 그러다가 암 선고라도 받으면 비로소, 살겠다는 간절함이 이들로부터 멀리하게 한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는 잘 알고 있다. 말씀, 기도, 주님과 동행 …
무엇이 중요한 지 몰라서가 아니다. 간절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데 냉랭한 심령은 도저히 따라주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은 알아도 이 심각한 문제와 한 판 붙을 만큼 간절하지가 않다. 때문에 성경을 더 붙잡고 이전의 뜨거움을 회복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하려니 내키지가 않는다. 간절하지 않아서이다. 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은 마음에 붙들린 심령, 기도를 시작하기 쉽지 않다. 간절함이 없어서이다.
이 간절함의 불을 지피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우리에게 주께서 형제요 자매로 부르신 영적 지체가 필요하다. 서로 만나 말씀으로 교제하며 격려하며 신앙의 도전 받으면서 싸늘하게 식은 마음 이내 뜨거워진다. 같이 영적 생활을 나누고 교감하는 형제, 자매를 통해 내 영적 내면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들을 통해 신앙의 자극을 받고 도전을 받는다.
며칠 있으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먹을 일이 참 갑갑하다. 매일 매끼 혼자서 혼밥에 혼밥… 영 입맛이 돌지 않는다. 겨우 먹는 것이 교회 옆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 사면 3개 주는 케익, 빵 그런거다. 그러다 학교가 개강을 하고 클래스 메이트들과 교내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면 입맛이 돈다. 평범한 반찬 몇 가지라도 식사가 즐겁다. 영의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혼자서 혼밥만 지속하면 영의 입맛이 도는데 한계가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냉랭한 심령이 뜨거워지려면 우리에게 영적 이웃, 영적 동료가 필요하다. 얼어붙은 심령을 녹여줄 형제 자매와 뜨거운 영적 교제가 필요하다. 식어진 가슴, 은혜와 성령의 불로 지피는 것이 교회의 기능이다.
“크리스천들은 먼저 예수와 연합되어 있으며, 이 연합은 교회 안의 성도들과 서로 연합하게 한다.”
“Christians are first joined to Christ. And this connection makes them one with each other.”(1)
만약 뜨거워야 할 교제의 장이 한겨울 냉골방처럼 차갑다면, 내가 먼저 불쏘시개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 각자는 그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지켜야 할 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권하시는 사랑과 헌신은, 내가 마음이 내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권하시기 때문에 순종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의지적인 사랑이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해야 되는 적극적인 헌신이다.
사도행전 2:42-47의 구절은, 인류 최초의 신약 교회, 교회의 오리지날 이미지, 예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세우고 말씀을 가르친 교회, 오늘날 현대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교회의 전형인 초대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행 2:42-47)
초대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들은 말씀을 중심으로 성도간의 ‘교제’의 활동이 대부분을 이룬다. 그 다음, 교회 안에서의 교제는 교회 밖의 사람들과의 교제, 그리고 전도로 발전하여 온 백성의 칭송을 받는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주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해 주셨다고 기록한다. (47절).
이러한 경이로운 현상은 현대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기독교 저널인 Christianity Today의 2020년 조사에 의하면, 성장하는 교회 중에서 무려 90%가 교회의 영적 성장, 성도의 영성 개발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Small Group을 통한 영적 교제, 즉 셀모임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이다. https://www.christianitytoday.com/.../little-church-big...
오늘 날처럼 실력, 전문성, 효율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효율과 결과를 강조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성품과 성찰과 생각과 관계의 깊이는 더욱 더 소홀히 취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주일날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설교 말씀 하나 들은 것으로, 영적 성품이 고결해지며 깊은 영적 성찰과 영적 성숙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 내 인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을 소망하며 달려 가고 있는가? 나의 영원한 미래는, 정말로 정말로 튼실하게 준비되어 가고 있기는 하는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과연 친밀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1) Pete Ward, Liquid Church, p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