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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점이다 선이 아니다
등록일
2025-03-23 21:02
조회수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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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 16:31)
구원의 전제조건은 바로 믿음이다. 내게 임한 구원이 영원한 구원으로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우선 내 믿음이 온전해야 한다. 내가 얻은 구원, 확고하게 확실하게 내 것이 되려면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생명체처럼 변한다. 자라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고 식어 없어지기도 한다. 그날 그때 하나님께서 보실 믿음은 한 순간, 한 정점의 신앙 상태를 일컫는다. 한 시대, 한 인생, 긴 기간의 상태가 아니다. 한 순간, 한 '정점(定點)’이지, 기나긴 기간, 세월을 의미하는 ‘선’이 아니다. 물론 그 동안 봉사하고 헌신했던 것 상급으로 보상받는다. 하지만 우선 심판을 통과해야지 의미있는 것이 아닌가? 일단 학교에 합격해서 입학해야지 공부 잘해서 우등상 받고, 조퇴/결석 않해서 개근상도 받고 할 것 아닌가? 따라서 오늘 바로 이 순간…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I affirm, I am not a Christian now. […] For a Christian is one who has the fruits of the Spirit of Christ, which are love, peace, joy. But these I have not. […] And I feel this moment I do not love God; which therefore I know, because I feel it. There is no word more proper, more clear, or more strong.”(1)
존 웨슬리가 1739년 1월 4일 일기에 기록했던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한 신랄한 고백이다. 그는, “지금 자신이 크리스천이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만큼 순간순간 자신의 신앙 상태에 민감하며, 거룩한 신자로서 믿음 지키기에 영적 발버둥을 쳤으며, 이를 위해 매 순간 깨어있어 자신의 영적 상태에 엄격했다.
12제자 중 가장 지척에서 예수를 섬겼던 제자는 베드로로 알려져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예수의 기사와 이적을 가까이서 많이 목격했으며, 자신 스스로도 물위를 걷는 이적을 경험했으며(마 14:27-31),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귀담아 마음에 새긴 제자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부활하실” 예언을 듣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항변하며(마 16:21-22) 예수를 향한 뜨거운 믿음에서 나온 결기(決起)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앞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예수를 세번이나 연거푸 부인했다.
나의 석사 공부를 위해, 우리 가족은 미시간에 2년여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큰아들은 서너살 때였다. 미시간의 여름은 꽤 덥고 햇살은 매우 뜨거웠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들을 데리고 야외풀장에 자주 갔다. 그런데 수심 150cm가 넘는 풀안으로 내 아들, 그 조그만 꼬마가 겁도 없이 당찬 점프와 함께 뛰어드는 것이다. 왜? 그 풀안에 아빠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팔 벌리고 있는 아빠가 보듬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믿음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3년 동안 매일매일 한 지붕밑에서 밥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했던 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관계가 믿음을 만든다. 관계의 단절은 믿음의 생명력을 앗아 버린다. 신자로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이 관계의 단절이다. 하나님과 관계의 단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과거 아니 바로 어제까지 힘쓰고 애쓰며 눈물 흘리며 봉사/헌신하고 인내했던 그 위대한 과거 믿음이 이 참혹함을 덮어주지 못한다. 다섯 처녀가 아무리 신랑을 사랑하며, 그가 오실 날을 소망하며 정결하게 20년 평생을 준비해왔더라도, 신랑이 생각보다 더디게 온다 생각하여 신랑과 관계된 신부의 신분을 점차 잊어버리고 신랑맞을 등불 밝히기를 띄엄띄엄 까먹다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준비 안된 신부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 25:1-12). 다시 강조하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보실 믿음은 한 순간, 한 정점의 신앙 상태를 일컫는다. 한 시대, 한 인생, 긴 기간의 상태가 아니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예수님께서 보실 그 시점에서의 믿음 상태이다(눅 12:40-48). 영적으로 해이해져서 하나님과 단절의 상태가 있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이 구절에서 ‘(구원을) 이루라’는 표현은 헬라어 원어로 ‘κατεργάζομαι(카테르가조마이)’로써, ‘이루다’ 또는 ‘완수하다’는 의미로써, 성도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선물을 일생의 삶을 통해 살아내야 하는 당위성을 말한다. ‘두렵고(φόβος; 포보스)’의 의미는 무섭고 공포에 질린 상태라기 보다, 존경하는 상대를 향한 경외심을 의미한다. 떨림(τρόμος; 트로모스)은 무서워 떠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분에 대한 진지한 자각으로 인한 영적 긴장 상태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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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John Wesley, The Works of John Wesley: Journal and Diaries II (1738-1743), ed. by W. Ward and R. Heitzenrater, Vol. 19 (Nashville: Abingdon, 1990), pp. 29-30.
*사진 설명: 수영장에 겁없이 풍덩풍덩 뛰어들던 시절의 큰아들, 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