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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화는 필요한가? 구원의 확신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
작성자
sosalty
작성일
2025-06-23 17:46
조회
168
답변완료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고 영생을 주시려 이 땅에 오셨고, 그를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구원의 확신 가지고 살면 되지 않나요? 그런데 왜 성화(聖化)를 받아야만 한다고 하지요?

 

 
전체 1

  • 2025-06-23 17:53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에 합당한 삶을 이루라고 명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원치 않으시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使臣)이 되어(고후 5:20),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이땅에 남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이 강조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말씀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지요. 구원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합당한 삶, 즉 거룩한 성도로서 마땅히 따라오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본분 지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죄에 무르고 약한 육신의 몸으로 세상의 영,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지면의 한계로 이하 평서문으로 답변 드림을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자의 사명을 잘 지켜내도록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기를 원하신다. 죄악과 관영으로 가득찬 이 곳 음부를 피하지 않고, 이 곳에 남아서 거룩한 성도의 신분을 잘 지키고 주어진 사명을 준행하도록 악으로부터 사단으로부터 보호해주시기를 원하신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주님의 보호하심이, 우리를 죄의 유혹과 미혹을 뿌리치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로 자라게 해준다.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게 한다. 이 과정을 성화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화의 과정이 멈춘다는 것은 믿음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믿음으로 자신 안에 만연한 죄의 유혹과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화없는 삶은 바로 세상에 굴복하고 마는 삶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 만큼 성화는 성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며 성령없이 성화를 얻을 수 없다.

    고통도 눈물도 아픔도 없는 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성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수 옆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는 그를 영접함으로써 성화를 이룰 과정 없이 낙원에 갔지만, 이렇게 죽기 바로 직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예수를 주로 영접한 이후, 인생에 많은 기간이 주어진다. 그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때론 믿음이 식고, 여러가지 죄를 짓고, 더러는 미혹당하고, 예수를 저버리며, 회개하고, 다시 회복하고, 또 다시 넘어지고…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 타듯 급등락을 반복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고하지 않는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풀무불 속 같이 애가 끊고 속이 타는 상황에서 고통을 이겨내고, 망치질에 두드려맞는 것과 같은 뼈아픈 시련을 견디어 내는 연단의 과정을 통해(욥 23:10-12) 정금과 같이 성숙한 믿음으로 성장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연단의 과정을 경험하도록, 우리 주변에 악이 활동하도록 놔두시며 아픔과 고난과 좌절과 치욕을 겪도록 환경을 허락하신다. 이렇게 험한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 믿음이 더 장성하고 성숙해지기를 원하신다. 믿기만 하면 그냥 거저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원치 아니하신다. 악을 이기기를 원하신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My prayer is not that you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you protect them from the evil one.

    은혜의 강물이 폭포수처럼 메마른 심령을 온통 적셨음에도 이내 현실로 돌아보면 지금까지 나를 짓눌러왔던 삶의 무게는 그대로이다. 분주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깨닫지 못했던 죄악을 깨달아 회개의 눈물을 쏟고 청아한 아침 햇살을 들이키는 것처럼 마음이 청량해져도, 다음날 눈 떠보면 한숨 짓게 했던 문제는 그대로임을 경험한 적이 수 없이 많다. 여름철 장대비처럼 내 안에 쏟아졌던 어저께 그 은혜는 무어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를 괴롭혀 왔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싹 제거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존재하는 그 문제들 안에서 우리가 더 성숙하고 성장하기를 기뻐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들을 40년간 쉬지 않고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이 있었다. 이방 민족 - 히위 족속,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여부스 족속, 블레셋 족속… 시내산 계명을 주시던 광야 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쫒아낼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시며 이스라엘을 격려하셨다. 단 전제가 있었다. 한꺼번에 말고, 조금씩, 조금씩…  단번에 그들을 쫓아내면 들짐승들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을 해할까하여(출23:29), 지속되는 대적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더더욱 강한 군사력을 키워 나가길 원하셨다.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출 23:28-30)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잔뜩 받아도 현재의 문제, 삶 속의 고통은 그대로인 이유도 이와 같이 분명하다. 바로 해결되어버리면 영적 교만과 방심이 들짐승처럼 우글거리며 내 안에서 번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라지 못하거나 나약한 신앙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악이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신 이유도 동일하다. 죄악과 싸워 이겨내고 정금같이 나온 굳건한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은 실제 삶의 현장에서 밀려오는 시련, 역경, 애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고난과 박해는 그리스도인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보다 거룩한 주님의 보호와 은혜로써 이겨내기를 원하신다."(1)

    예수 믿게됐다고 순탄하고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았다는 것은 순전한 인간의 생각, 인간의 착각이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삶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고난이 주는 참의미를 되새기며 고난 앞에서도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짐으로써, 우리의 신앙은 성숙해지며 우리의 삶은 성화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오히려 감사하며, 고통속에서도 도우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우리는 그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고난 앞에서도 미소지을 수 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052825

    참조(1) John Stott, 'Suffering and Glory' in The Cross of Christ (Downers Grove, IL.: IVP, 2021), 30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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