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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겨울예찬]
등록일
2026-01-31 23:27
조회수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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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초목들이 1년 중 최고의 RPM으로 약동하는 그 때…
나는 왕성하게 뿜어대는 생명력이 좋다.
나도 덩달아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아 좋다.
그런데 이 추운 겨울도 그 동안 62번을 사귀어 보니 그 매력이 새롭다.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육중해짐에 따라, 이 시린 계절의 '우러나는 맛'을 새로이 배워가고 있다. 한강을 얼려버릴 만큼 북극의 사나운 한기가 한반도를 덮친 올겨울, 유난히 그 의미가 각별히 다가온다.
첫째, 겨울은 소망이 있어서 좋다.
"파랗게 활기 넘쳤던 여름이 가는구나!" 늦여름 읊조리는 상실감이 없어 좋다. 지는 낙엽을 보고 사진이라도 찍어대며 "더 이상 가지 마라!"고 대자연 앞에 굴신(屈身)하는 처량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 거무튀튀한 거목이 긴 잠을 깨고 연두색 새순을 내며, 단단히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의 거대한 energy를 목도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여기저기서 생명이 잉태되는 젖비린내를 맡을 생각을 하니 내 마음은 이미 연두색으로 연두스러워진다. 이 계절엔 아쉬움이 없다. 오직 파란 소망만을 품고 있다.
둘째, 겨울은 나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여름철 아침산책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일어나고자 애쓰지 않아도, 초목의 뿜어대는 피톤치트는 잠에 빠진 나를 경각시킨다. 게다가 일찍 일어난 새들이 종알거리며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이렇게 여름날 아침은 조금 게을러도, 느슨한 나사 몇 개 풀려도 굴러가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은 다르다. 남다른 결단이 필요하다. 그 시끄럽던 수다장이 잡새들은 어디론지 가버렸고 나무들은 앙상하고 대지는 말랐고 아침의 냉공기는 나를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심기일전 (心機一轉) 큰 호흡을 내쉬고 다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비장한 결단이 있어야 아침의 첫 단계가 겨우 굴러간다. 이 계절은 내 꼴과 처지와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나를 윽박지른다. "네가 얼마나 연약한 존잰지, 네 의지의 한계가 어딘지 한 번 보라!"고 말이다.
그래서 겨울은 나를 더욱 긴장케 한다.
이것이 세번째 매력 포인트다. 겨울은, 내가 이 땅에 잠시 발 붙여 사는 나그네라는 존재를 실감나게 일깨운다. 집 떠나 낯선 이방땅에 있다면 항상 긴장하지 않던가? 어리석고 무능하고 연약한 나그네가 낯설고 서러운 이방땅에서 버티려면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히 살아있는 계절이다. 다른 계절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매혹할 때, 우리는 “이 곳이 좋소이다!”하며 이 곳이 마치 본향인 냥 도취되며 살기 쉽다. 하지만 대자연이 자세를 낮추는 - 볼 품 없고, 만질 것 없고, 향취 없는 - 겨울에야 우리는 비로소 참 집을 그리워한다.
멋있고 매력넘치고 훌륭하고 빼어난 것들,
보고 만지고 맡고 맛보고 하는 사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살다가...
비로소
자연이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이 계절,
우리는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졌던 참 눈을 뜨게 된다.
영원한 우리의 본향이 더 더욱 간절해지는 계절.
이것이 겨울의 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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