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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살기위해 그래요]
등록일
2026-02-10 08:11
조회수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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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 4:17-18)
현대의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구절 중에 하나이다. 현대의 윤리적 관점에서 그녀를 부도덕한 여자로 볼 수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는 찾기 힘들다.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살펴보면 남녀불평등이 극심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여자가 남편과 갈라서는 결정권을 갖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대였다. 여자의 정욕 때문에 한두 번이 아닌 다섯 번이나 이혼했다는 사실은 당시 여성이 갖는 사회적 신분과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여인이 자의에 의해서 남편과 이혼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요한복음에 정통한 Craig Keener, Shaye Cohen과 같은 신학자들은 사회적 격변에 의한 변고, 사망 등으로, 본의 아니게 헤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로/토목공사등 징용 또는 민란에 의하며 행방불명, 투옥, 사망된 경우일 수 있다. 아무튼 이 여인은 매우 가련하고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다. 이것이 본문을 시종 이끌어 가는 정서이다. 어떤 사연으로 남편을 잃었던지, 남편에게서 버림받았던지, 우리가 가장 눈여겨볼 것은 그녀가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동거생활도 먹고 살기 위해 그것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정황에서 할 수 없이 처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과부, 고아와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불쌍한 처지에 있는 계층이다. 이들 세 부류의 공통점은 자신의 힘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과부'를 히브리어로 '알마나(אַלמָנָה)'라고 표현한다. 구약과 신약에서 소개된 ‘과부’들이 지닌 공통적 속성이 있다. 이들 '알마나'들은 치욕과 빈곤과 곤경에 처한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오미와 룻, 사르밧 과부(왕상 17장)가 그랬고 이러한 곤경의 메타포는 나인성 과부(눅7:11-17), 불의한 재판관에 끊임없이 하소연하는 과부(눅 18:1-8)로 연결된다. 따라서 이사야는 과부의 때를 ‘치욕’이라 일컬었고(사 54:4),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를 위하여 신원하신다(신 10:18)고 까지 하셨다. 죽음보다도 더 싫은 매일매일의 삶을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불쌍한 여인. 물은 길러야 하길래, 지중해로부터 날아오는 열기가 최고조인 정오에,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는 가장 햇살이 뜨거운 시간에, 남의 시선을 피해 밖으로 나온 정황만으로도 그녀의 기구하고 소외된 인생을 잘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죽지못해 살아가는 애절한 상황에서 오직 단 하나의 소망, 유일한 낙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인데, 사마리아인인 자신이 "산에서 예배하는 것은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없다고 당신들 유대인들은 손가락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인 예배마저도 이렇게 헛제사라고, 쓸데없는 것 드린다고 부정당하면… 전 어떻게 살아요?"
“여인아!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장소가 중요한게 아니야. 오직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의 핵심이 더 이상 '장소와 형식'에 있지 않고, '대상과 관계'로 전환되었음을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영과 진리로… 이 가련한 여인처럼 갈급함과 사모함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의 갈구를 귀담아 들으신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간증]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이제 2년 가까이 되어 가는 ‘창원 미장원 강아지'와 연루된 사건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내가 당시 대처한 정황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기대하며 지내왔는데, 2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더욱 더 점입가경, 첩첩산중이다. ..
하루 아침부터 '너무도 길고 긴 하루의 드넓은 여백을 어떻게 채우며 지내나?'
이른 아침부터 인생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 짐 때문에 주님앞으로 간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하신 주님만 붙들수 밖에 없다. 말씀읽고 기도하고… 이런 것 하면 좋아서가 아니라, 고결한 신앙습관이라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다. 살려면 이 방도밖에 없기 때문에 말씀 붙들고, 기도 붙드는 것이다. 말씀 놓는 순간, 기도 놓는 순간, 엄청난 무게의 인생짐이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어제도 서울갔다 밤늦게 귀가했지만 오늘 새벽예배 준비로 자정을 훨씬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 육신은 피곤했지만, 영혼은 맑아지고 생기로 촉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웅장한 건물안 화려한 성가대의 아름다운 선율 보다, 인생의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주님 아니면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물가에 서 있는 그 한 영혼을 찾으신다. 지금 내가 아파하는 현실은 예배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더 애타게 갈구하게 된다.
"아버지여! 어버지여!
주의 소명 이루소서!"
0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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