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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겉으론 뜨겁지만
등록일
2023-10-01 10:08
조회수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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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분들의 초청으로 인근 학교와 체육공원에 가서 테니스를 즐긴 지 꽤 되었다. 간혹 천주교 신자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부터 신앙배경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만남을 지속하다 보면 그들의 겸손한 언어와 배려의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느껴진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교회, 믿음, 말씀, oo목사 등등을 언급하면서 큰 소리로 통성명하는 – 어떨 때에는 그것이 믿음의 과시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 개신교신자들과 결이 다소 다르다.
내가 일생 동안 만나본 개신교신자와 천주교신자의 숫자가 너무나 한정적이라, 일반화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이러한 생각은 상당히 나의 주관과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인정한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주변의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의 신앙 정체성에 대해 그렇게 강변하지도 시끄럽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하지만 만나보면 만나볼수록 괜찮은 사람, 향기 나는 사람, 같이 있고픈 사람, 배우고 싶은 사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주변에 그에 못지않은 개신교 신자, 사역자들도 많이 만났고 만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부인할 수 없는 편차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는 나의 영적 정체성, 영적 지향성과 관련된, 오랜 동안 내 안에서 무겁게 묵어왔던 내적 질문이었다. 아직도 끝 없이 내가 내게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엊그제 팀 켈러가 주창한 ‘City to City 교회개척운동’ 3박4일 세미나에 다녀왔다. 신학교 시절부터 팀 켈러 목사님으로부터 직접 지도 받고, 지금은 뉴욕에서 사역하시고 계신 한 목사님으로부터 그를 회고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평생 동안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의 ‘열매’에 초점을 맞춰 사역을 해오셨다고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 5:22-23)
우리는 ‘열매’라 하면 성과, 유형 무형의 결과치를 자연스럽게 연상하는데, 이 모든 성령의 열매는 ‘성품’에 관련된 것이다. 제 아무리 큰 사역을 하고, 큰 존경과 인정을 받는 신앙의 결과치를 얻더라도,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의 향기, 예수의 성품이 드러나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 11:45)
“내가 행복하니 너희도 행복할지니라”하시지 않았다. “내가 성공했으니 너희도 성공하라”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비신자나 신자 할 것 없이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행복’, ‘성공’, ‘능력’은 매우 중요한 가치 덕목이 되어왔다. 이것들을 보유한 크기에 따라 자리의 상석이 정해지고, 존경의 질과 크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교회개척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목사님들도 ‘교회개척 성공’, ‘성공한 목회’ 등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만큼 거룩을 향한 뜨거운 몸부림, 거룩하신 그분과의 관계, 관계의 깊이, 성찰의 깊이는 얕아만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중세 유럽에는 ‘수도원(monastery)’이란 영적 공동체가 있었다.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인격적인 일대일 관계 속에서 성찰의 깊은 우물을 파면서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곳이다. 영국에는 카톨릭이나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그러한 곳이 아직도 있다. 인생의 어둔 골짜기를 지날 때, 몹시도 그분과 사적인 교감이 간절할 때, 그 곳은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이러한 곳은, retreats라고 한다. 한국에 홀로 나온 지 이제 삼 년. 그 수도원, retreats 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