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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 Discovered: 들키지만 않으면
등록일
2023-10-01 10:18
조회수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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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롬 7:8)
이 구절은,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 해석도 잘 안되고 이해하기 힘든 난해구절이었다.
가령 엄마가 제과점에서 맛있는 케익을 사와서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다고 하자. 엄마는, 서너살 되는 작은 아들에게 “형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다 같이 먹을 테니까, 절대로 케익에 손대지 말라고 말씀을 한다(계명이 세워짐). 작은 아들은 “케익 절대 먹지말라!”는 지시 한 마디 때문에 냉장고 안 케익에 온통 신경이 쓰인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냉장고를 살짝 열어본다. 그러자 먹고 싶은 탐심이 불일 듯 일어난다(제1범죄; 롬 7:8-9;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전에 법을 모를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결국, 티가 안나도록 케익 위에 코팅된 쵸코크림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다(제2범죄; 죄의 확장성; 롬 7:20; 원치 않은 것을 함,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안의 죄이니라).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는 냉장고 문을 자신이 열지 않았고, 케익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제3범죄; 끊임없는 죄의 확장성).
해서는 안될 것을 떨쳐버리려고, “죄짓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에 집착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는커녕 도리어 얽매이는 형국에 빠진다. 청소년의 경우, “게임 하지 말아야지.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할수록 게임에 빠지게 된다. 음란물에 중독된 청년은, “보지 말아야지. 절대 안봐야지!” 할수록 저속한 그림과 영상에 빠져든다. 죄의 영향력은, “죄 짓지 말라”는 계명을 탑재했을 때, 그 힘이 부스터(booster)된다. 계명을 통해,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죄성을 흔들어 깨워서 죄에 연약한 육신이 결국 범죄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죄의 속성이다. 투명한 비커 안에 담긴 흙탕물은, 고요 속에서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 물속의 불순물은 밑으로 가라앉고 물은 맑게 보인다. 하지만 다시 비이커를 세게 흔들면 물 전체는 거무튀튀한 더러운 흙탕물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죄는 계명을 이용하여 내 안에서 숨죽이고 가라앉아있는 죄성을 마구 흔들어대며 용솟음 치도록 자극한다. 율법 계명에 사로잡히면, 죄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해지고 결국 죄에 무른 육신은 굴복하게 된다. “죄는 사람들에게 각양 악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첫 단계로 계명을 활용한다.”(1)
자신의 의지로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고 힘쓸수록 그 계명을 지킬 수 없다. 결국 죄의 덫에 빠지고 만다. 그것에 집착하여 애쓸수록 육신 안에서 내재되어있는 죄성이 용솟음 칠 뿐이다. 그리고 그 죄성이 남으로부터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자위한다. 결국 범죄해도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치부하며 은밀히 죄를 범하는 낙을 즐긴다. 이는 종교생활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신 안의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 밖에 있는 타인들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며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기독교는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신앙이다. 자신 안의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영과 혼과 마음을 지키는 믿음을 중요시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하나님보다 주변 이웃들을 의식하면서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신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교회 마저 아프게 한다. 자신 안에 죄의 마음이, 예를 들어 미움이 거하고 있으면 이미 구원은 온데 간데 없는 것이다. 그 안에 영생은 없다. 행동으로 살인을 범해서만 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미움을 품어도 참혹한 죄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 3:15)
이것이 현대교회의 아픔이다. 성직자의 은밀한 일탈, 성도들의 교회 생활과 일상 생활에서의 크나 큰 편차, 이를 가정 안에서 보고 자란 자녀들에게 유전되는 종교생활. 양적 부흥, 효율, 외면의 경건, 복된 결과에는 관심을 갖지만 내면의 경건, 관계의 깊이, 거룩성을 가벼이 여기는 형식적이고 외면에 치중하는 종교인 수준의 얕은 영성이 바로 그 아픔이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 5)
비교, 교만, 자랑, 탐심, 원망, 불평, 비판, 비방… 성경에서 분명히 지적한 죄에 대해서는 잘 아는지라 경건의 모양에는 지독히 신경 쓰는 외면적 신자들은 입술 밖으로 그들의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유려한 믿음의 언어들로 습관적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잡초처럼 이들 죄의 마음이 자라나고 있어도 아무런 영적 거리낌이 없다. 마음껏 탐욕하고 원껏 비판해도 마음 속 찔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외면적으로 술 담배 안하고, 때 되면 경건 생활 잘 지키고, 기도, 헌신, 봉사하면 믿음 생활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하면서 노래를 은혜롭게(?) 부르며, 이웃에게 “사랑, 사랑”을 외치지만, 형제를 향한 사랑 보다, 자기 사랑으로 가득 찬 교인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경고한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1-2)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고전 13:5)” 라는 말씀이 있는데,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간에, 성도와 성도간에 크리스찬으로서 예의를 벗어난 언어와 선을 넘은 태도로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 상대방을 그만큼 사랑하니까, 교회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이는 상대방과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이며, 결국 자신을 사망으로 이끄는 죄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이렇듯 “계명-죄-사망이 한 패가 되어 우리를 파멸의 불못으로 몰고 간다.”(2)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1절).
마을 입구에 아담하고 눈에 띄게 아름다운 한 집이 있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마다 누군가가 집 앞 마당에 쓰레기 더미를 몰래 쌓아놓고 사라진다. 집주인은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경고 팻말을 세운다. 그러나 무단투기 문제는 그치지 않는다. “쓰레기 투기 엄금!”, “고발조치 하겠음!” 점점 더 큰 팻말, 강력한 문구로 대응을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러다 주인이 생각을 바꾸었다. 집 앞을 아주 아름답게 꽃밭으로 가꾼 것이다. 그런 직후, 쓰레기 문제는 깨끗이 사라졌다.
자신을 얽매고 있는, 범죄자에게 형벌을 요구하는 율법의 계명 보다 그 반대편의 아름다운 가치, 살리는 생각, 생명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율법보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계명 자체보다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생각, 그분의 뜻을 새겨야 한다. 의롭게 됨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원수를 사랑하라. 비판하지 말라. 비교하지 말라. 오래 참으라.” 자신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는 계명임을 깨닫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그리고 그가 부어주시는 마음을 의지해야 한다. 믿음의 초석은 계명의 행함 이전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속성을 깨닫는 것에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17, 19)
형벌이 두려워 율법 계명의 준수에 마음을 두는 자는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 그분의 속성을 깨달으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무겁고 진지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믿음의 지향점은 그분의 생각, 뜻, 마음과 나의 그것들이 일치하는 것이다. 인생의 지향점은 남들에게 안 들키고 행위로 인정 받아서 즐겁고 행복한 삶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속성,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에 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레 11:44)
(1) Ben Witherington III, Paul’s Letter to the Roman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Grand Rapids: W. B. Eerdmans, 2004), p. 190
(2)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Leicester: IVP, 1994), p.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