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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칼럼
상념에 눌려 있을 때
등록일
2023-11-24 22:54
조회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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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바로 잡고 오늘 늦은 오후에서야 이번 주 주일설교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은 사무엘서의 ‘순종’에 대한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고 죽으셨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 참혹한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셨다. 이렇게 죽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는 무엇일까?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위해 십자가에 몸이 찢기며 피를 쏟고 피범벅이 되어 죽었으니, 너도 내 희생을 깨닫는다면 나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니? 내가 치른 대가에 대해, 상응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느 정도는 보답해야 하지 않겠니?”
이러실까?
“아이구, 주님! 저 때문에 그 참혹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모진 수모와 조롱 속에서 죽으셨는데, 이 한 몸 주를 위해 바치겠나이다.” 이렇게 뜨겁게 헌신하는 태도도 귀하지만… 주님께서 죽으시면서 우리에게 정작 원하시는 바는 ‘순종’이다. 당신의 바람, 당신의 당부, 당신의 명령에 대한 순전한 순종.
앞서 말한 가족에 대한 상념이 주는 무게도 만만치 않지만, 교회개척에 대한 부담감 또한 적지 않다. 매일 아침 창원극동방송을 듣는데, 당당히 자신들이 담임하는 교회이름을 내걸고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이 부럽다. ‘언제 수많은 우리교회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는 그 날이 올까?’ 불확실한 앞날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주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힘없고 나약한 자신의 손에 의탁해봤자 탄식이 나오고, 푸석한 환경만 바라보다 의기소침해진다.
이것이 지난 화요일 영국 이삿짐 도착 후 3박4일간의 일기(日記)이다.
내가 아무리 산과 같은 고민에 눌려 있어도 내 안에는 여전히 빛이 비추고 있으며
외딴 섬 등대지기와 같은 고독이 밀려와도 주님은 여전히 나를 눈여겨 보고 계시다.
주님께서 하신다고 하시지 않는가?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자신이 세우신다고 하시지 않던가(마 16:18)?
나의 주인, 나의 대장(大將), 멘토이신 그 분을 신뢰하여
순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주일 설교 때문에 거룩한 부담감 때문에 성경을 펼쳤지만,
말씀이 심령에 들어오니
내 안의 빛이 안아주는 포근함이 밀려든다.
이것이 말씀 전하는 자의 유익 아닌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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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늘 오후 창원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