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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마주할 때
등록일
2023-08-22 15:51
조회수
330
[고난을 마주할 때]
사람에게 어찌 형통한 날만 있겠는가? 고난의 때도 있다. 반드시 있다. 일평생 수도 없이 많다. 모두가 마주하기 싫어하는 상황이지만 이 때에는 할 일이 하나 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전 7:14)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어떤 상황도 그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 없다. 특별히 고난 속에서 울부짖는 신음을 토하도록 환경을 허락하신 그 분의 뜻은 무엇일까? 나에게 이 고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을 빼먹고 살았길래? 아무 생각할 힘도 사고할 여력도 여의치 않는 곤고한 시간이지만 생각해야 한다. 있는 힘 다 끌어 내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내게 약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되며, 나중에 비슷한 놈 만났을 때 이겨낼 근성이 생긴다. 생각이 안 나면 일부러 용 쓸 필요는 없다. 마음의 고요 속에서 잠잠히 구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그의 영이 찾아 오셔서 깨닫게 해주신다.
하지만 이 고난의 시간이 너무 길고 아파서, 기다릴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되도록 빨리 거기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렇게 해결에 급급한 마음은 곰곰이 주 안에서 사고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의 구호가 위로는 될 수 있지만, 나의 경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고난의 무게가 짓누르는 힘이 가속화될수록, 그에 대한 신뢰가 희미해지며 ‘손 놓고 계시는’ 하나님께 불평하는 마음이 잡초처럼 자라난다. 그 반대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임을 자각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를 사랑하는 자는 그가 원하시는 바를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 행하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에서 단지 벗어나기를 바라시기 보다,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는 영적 근성이 단련 되기를 원하신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그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욥 23:10). 우리가 참고, 견디고, 훈련 받고, 단련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그를 사랑하는 자'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일이지만,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7)
여기서 ‘참다’의 의미로 쓰인 헬라어는 στέγω(스테고)로써, ‘무엇을 덮거나 보호하다’는 원래 뜻을 갖는다. 따라서 ‘허물을 덮다’(Philip Doddridge, John Gill), 또는 ‘억제하다’, ‘자제하다’(Walter Bauer) 의미에 가깝다. 오히려 문장 뒤에 ‘견디다’의 표현으로 쓰인 ὑπομένω(휘포메노)가 고난 속에서 ‘견고히 서다’, ‘참다’의 뜻에 더 가깝다.
그러면, 윗 구절의 주어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사랑’일 수 있다.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주어로 채택하고 싶다. 그렇게 해석하니 오늘 주시는 은혜가 특별하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게 하느니라. 왜 그런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그로부터 ‘사랑 받.는. 자’라고 외치기 전에, 내가 그를 ‘사랑 하.는. 자’라는 영적 정체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자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영적 자각이, 이웃의 허물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덮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가 주신 약속을 굳게 믿으며, 믿음이 끝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주는 소망을 꼭 붙들며, 모든 고난과 결핍과 좌절의 상황을 끝까지 견디어 내게 한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그 고통과 억울함을 참을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벧전 2:19).
고난이 싫고, 그 속에서 질퍽대는 시간이 너무 힘들고, 앞으로 더 큰 고난 속에 휘말릴까 솟구치는 두려움이 우리의 영적 초점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과 힘을 달라고 구하기보다, 어서 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조급하게 구한다. 조급함에는 은혜가 머물 수 없다. 조급함의 배후에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자,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두려워 하는 자, 자신을 사랑하는 자이다. 그래서 자신과 자신이 처한 정황에 몰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원하심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누리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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