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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둘째 아들: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기독교
등록일
2025-02-26 19:26
조회수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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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축구’는 극히 중요한 생활과 문화의 일부이다. 특히 영국에 조기유학을 준비중인 자녀(특히 아들)를 둔 부모님은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리미어리그의 주요팀, 주요선수들, 그리고 이들의 최근 성적에 대해 최소한 숙지하고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그래야지 낯선 나라, 낯선 학교, 낯선 아이들과 학교생활에 적응이 순탄해진다. 아이들 대화의 대부분이 축구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my favorite team과 my favorite player, 그리고 왜 이들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필수적으로 꿰차고 있어야 한다. 이것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일단 왕따로 가는 첫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자기소개의 말미에 “my favorite team is…”으로 자신에 대한 소개를 맺는 것이 자연스러운 매너이다. 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통한다. 직장에서, 사업상 비즈니스 관계에서 통성명할 때, 이런 대화는 Ice-breaking하는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
영국에는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축구 클럽이 조직되어 있고 이들은 크고 작은 지역 리그에 소속되어 시즌 내내 경기를 펼친다. 꼬마들은 4살때부터 ‘Tots Football’이라는 지역마다 개설된 프로그램에서 축구라는 운동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하며, 6살부터는 동네 클럽에 가입하여 마을을 대표하여 뛸 수 있다. 참고로, 아래는 우리 둘째 아들이 유소년때 뛰었던 Claygate Royals팀의 웹사이트이다. https://www.claygateroyals.club/teams
이들이 9살이 되면, 유명 프로축구팀에서 꽤 유망해보이는 어린이를 발굴하여 Club Academy System에 참가시켜, 체계적인 훈련을 받도록 한다. 각 프로팀은, 여기에서 16세에 이르기전에 우수선수들을 선발(U18 team), 장학금을 지급하며 미래의 프로축구선수로서 본격적인 투자를 한다. 이와 같이 영국에서 축구는, 팬으로서, 아마추어선수로서(마을/학교/지역/국가를 대표하는), 프로선수로서, 뒷바라지하는 부모, 응원하는 할아버지/할머니로서 거의 전국민이 깊게 관여되어있다. 이들 문화의 중심에 축구가 있고, 자신 가족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매주말 게임(그것이 프리미어리그 프로경기든, 아마추어경기든)에 사로잡혀 뜨거운 관심을 갖는다.
문제는 이 범국가적 스포츠경기가 주말(대부분 일요일) 에 열린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봇물처럼 밀려드는 세속주의, 물질주의로 위축된 영국의 기독교에 –하나님께 드려야 할 주일을 축구장으로, TV앞으로 빼앗음으로써 – 큰 카운터 펀치를 가격한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나이 지긋하신 목사님과 크리스천들은, 1992년 8월 프리미어리그 탄생이후 기독교인들의 삶과 이전의 삶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탄식을 내쉬며 안타까와 한다.
2006년 5월 영국으로 주재생활을 시작한 우리 가족에게도 이 여파는 얼얼할 정도로 쌩쌩하고 강렬했다. 둘째 아들의 경우엔 유달리 심했다. 축구를 통해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축구를 통해 낯선 이방인들로부터 인정받고, 자신을 향한 동네 학부모들의 응원의 함성에 매료되었던 5살짜리 꼬마에게, 축구 시합이 있는 일요일 아침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장엄하고 존귀한 시간이었다. 아들의 축구를 향한 열의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부부는 예배시간과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시합이 끝나자마자 악수하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차에 태워 옷을 갈아입히고(유니폼과 축구화에서 떨어진 진흙 덕분에 내 차안은 온통 진흙밭이 되어버린다), 차안에서 간식/음료를 먹이면서, 쏜살 같은 속도로 예배에 가까스로 참석하는 것이 매주 일상이 되어갔다. 당연히 예배의 질이 떨어졌다.
주일 축구를 강력히 반대를 했지만 우리 가족 4명중 나만 왕따가 되는 괴로움만 받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둘째에게 둘만의 면담을 제안했다. 많은 시간을 얘기했다. 대부분 내가 말을 했고, 선재는 들었다. 우리의 믿음이 뭔지, 예배가 왜 중요한지, 주일날을 어떻게 간수하고 보내야 하는지를… 곰곰히 들은 그는 나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날 선재의 결정이 지금까지도 고맙다.
이후 선재의 생활을 지켜보는 아빠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토록 날쌘돌이 활발했던 그에게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종달새처럼 명랑했던 그의 말수가 극도로 줄어들었다. “Sunny(선재 영어애칭), get the goal!” 전율할 정도로 자신을 응원했던 고함소리를 더 이상 못 듣게 됐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그때뿐… 불평하지 않고 비뚤게 나가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준 그가 고맙다.
몇주전 내가 사랑하는 전도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교차 영국에 갔는데, 어느 선교프로그램 세미나에서 의젓한 크리스천으로 자란 선재를 만났다고… “좋은 말 좀 많이 해주라!”는 나의 부탁에 더 이상 좋은 말을 해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자랐다고… 5년이상 미국 남부, 멕시코 오지에서 목숨을 담보하며 선교활동을 했던 – 내가 존경하는 – 사역자의 말이라 더욱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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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훈련에 몰입중인 다섯살 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