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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컬럼
목사 칼럼
신뢰
등록일
2025-03-09 19:22
조회수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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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뼈속 사무치게 ‘어머니’가 생각나는 날이다. 세상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내 말에 의구심을 품어도, 어머니만은 내편이셨다. 내가 실수해도, 어디서 문제를 일으키고 집에 들어와도… 자식 때문에 상대방의 퍼붓는 강공에 수많은 수모의 말을 이미 들으셨어도… 항상 “강헌이가 그런 건 이유가 있겠지”하셨다. 꾸지람이나 추궁보다, 기가 푹 죽어 집에 들어온 어린 나를 다독거려주셨다.
“나는 널 믿는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를 밟고 누르는 것 같은 중압감 속에 질식하던 나를 이렇게 격려하고 믿어주셨다. 어머니의 나를 향한 믿음은, 고난 속에 내 머리에 씌워진 무겁디 무거운 철모를 환하게 벗겨주신 구원의 손길이었다.
고등시절 학기말 시험 때, 내 뒤에 앉은 친구에게 답을 가르쳐주다 감독 선생님께 걸려 근신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풀이 죽어 귀가할 때는, 이미 어머니께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자초지종 설명을 다 듣고 나신 이후였다. 어머니께서 상심하신 것은 내가 부정행위 한 것보다, 담임선생님의 나에 대한 표현에 대해서 였다. “강헌이가 모범생인줄 알았는데, 부정행위나 저지르고 이중인격자인줄 몰랐다”고. 그 다음날 지적(知的)으로 차분하게 말씀 잘 하시는 어머니 친구 한 분을 대동하여, 그 분 집을 찾아 가셨다고 한다.
그러셨던 어머니께서 대장암으로 투병하시고 돌아가신지 이제 7년이 된다. 영국에서 사업한다고 신학한다고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다가, 신학교 여름방학 중에 2개월간 간병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지 몇주만에 돌아가셨다. 가까이서 뵙지 못한 자식이 가장 큰 불효임을 깨닫고, 평생 죄송함으로 살고 있다.
어머니는, 수년간의 긴 투병생활에서도 멀리 있는 막내아들 나에게 많이 의지하셨다. 회복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연로하신 분께서 얼마나 서럽고 서운하신게 많으셨는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전화를 드렸는데 한 번 통화하면 평균 2시간 이상 걸린다. 한 말씀 또 하시고 또 반복하시고. 어쩌다 내가 무심코 지나친 일에 대해 하나 하나 세심히 지적하시면서 그 서운함을 가지신 어휘력을 총동원하여 질책하신다 - 2시간 동안. 듣기가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전화기를 슬며시 내려놓고 싶지만, 그 섭섭하신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꾹 경청하면서 중간중간 ‘추임새’ 반응을 해야지 당신께서 서운해하지 않으신다.
교회개척하러 창원에 내려오기전, 어머니의 아래되시는 외삼촌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같이 식사하시면서 어머니를 회고하셨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머니와 외삼촌 두 분, 이모 이렇게 네 분이서 식사 모임을 하시면, 자주 이러셨다고 한다. “강헌이 영국서 오면, 다 일러줄거야.” 듣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일에, 참 예민하셔서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을 그렇게 토로하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전해듣고 내 숙소로 돌아가 참으로 서럽게 눈물 콧물 쏟으며 울었다.
더 전화할걸…
더 들어드릴걸…
그런 엄마가 이젠 없다.
지금 내 편이 절실한 이 때 없다.
지구인 99%가 내게 침을 뱉어도,
나를 끝까지 믿어주시던 그분이 없다.
…
…
어제 주일 예배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시는 설교말씀을 듣고 생각이 나서 적어봤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2-3)
051324
*작년 5월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