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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자유, 진정한 자유]
등록일
2026-02-27 09:42
조회수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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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문장에서 쓰인 헬라어 ‘자유’는 ἐλευθερία(엘루세리아)이다. 이 단어가 의미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된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육신의 정욕에 눌려있는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반면에 세상이 이해하고 있는 자유는 개인의 독립과 자율성을 전제로 한다. 외부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태로 풀려나게 된다. 반면에 성경적 자유, 즉 ‘엘루세리아’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복귀함으로써 옳은 일을 하게 한다. 이렇게 옳은 일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상태를 팀 켈러는 ‘Fitness’ for a purpose라고 표현하며, 피아니스트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명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누리는 ‘자유’는, 악보를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연주하는 ‘방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자유는 규칙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규칙(악보)대로 연주할 수 있는 실력과 정서와 작곡자의 의도와 교감할 수 있는 감성을 배양할 때까지 자신의 시간을 통제하고 훈련에 몰입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 때, ‘Fitness for a play’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유의 몸이 되어 물 속을 벗어나, 들로 길바닥으로 나다니는 물고기는 바로 죽고 만다. 물 안에서 그의 행동반경이 제한되어있을 때에만 물 속에 있는 산소를 힘차게 들이마시고 자기 마음껏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그에게는 공기 속 산소는 무용지물이다.(1)
진정한 자유는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올바른 계명의 말씀이 주어진 상태이다. 즉 진리의 말씀이 주어지고, 그 진리 안에 거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 반면에 세상이 말하는 자유는 외부의 주인 또는 외부로부터의 외압과 간섭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 진리의 말씀에 거하는 것에 있다고 하신다. 우리 현대인들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하고, 내 원하는 것을 행하고 성취하며 사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이러한 '방종'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는 나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래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다.
기차가 궤도 위를 달릴 때에 가장 안전하게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듯이, 우리의 삶도 진리의 말씀이라는 궤도 위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형통한 것이다. 물고기가 물 안에 있을 때 즉 자신이 부화되었던 원래의 장소 - 물 속에 있을 때 - 가장 자유롭게 숨쉬며 물고기 임을 만끽하며 누리고 살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인간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창조주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셨던 그 아름답고 고귀한 “참 좋았더라!” 상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거한다는 것은,
차갑고 무거운 계명을 지켜야 되는 짐이 아니라…
진리라는 울타리에 갇혀진 제약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며,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생명과 평강과 희락이다.
022726
(1) Tim Keller, The Reason for God (London: Hodder & Stoughton, 2008), pp 45-47
*관련된 설교말씀을 들으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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